최근 일주일 사이 네 가정이 생활고와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버렸다. 이들은 행복했던 서민층 가정이었으나 병마와 실직으로 졸지에 ‘틈새 빈곤층’이 됐다. 그중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정부 지원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신설된 복지제도에 따라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배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긴급지원제도 몰랐던 세 모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의 어머니 박모 씨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 신청했다 해도 식당일을 하는 동안 월 150만 원가량의 소득과 30대 두 딸의 추정 소득을 고려한다면 올해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인 3인 가족 최저생계비 132만9118원을 넘어서 지정될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세 모녀를 구할 수 있었던 ‘동아줄’은 남아 있었다. 보건복지부 긴급지원제도는 최저생계비의 150% 이내 소득자 중 위기에 직면한 이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한다. 팔이 부러져 실직한 박 씨는 지원 요건 중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에 해당됐다. 24시간 상담을 지원하는 보건복지콜센터(129)로 전화하거나 주민센터에 요청할 수 있었다. 서울 송파구 복지정책과 긴급지원 담당자는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이나 ‘실직’을 위기사유로, 3인 기준으로 한 달에 88만900원씩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지원은 3∼6개월간 받을 수 있다. 최저생계비의 200% 소득 가구도 같은 방법으로 서울시 복지재단 희망온돌사업의 위기긴급 기금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또 모녀가 남긴 70만 원의 공과금 봉투에서 보듯 틈새 빈곤층엔 당장 내야 할 돈이 큰 부담이 된다. 이 경우 구 단위나 복지재단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긴급 구호사업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서울 광진구는 2009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이웃돕기 성금을 재원으로 지원사업을 벌여왔다. 가정 방문을 거쳐 위기 가구 3∼4인 기준 최대 35만 원을 4일 이내에 지급받을 수 있다. 성북구는 올해 초부터 동 주민센터를 거점으로 긴급구호지원을 실시하고 빈곤층 환자와 지역 병원의 일대일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중구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동절기 쪽방 가구에 단열장치를 설치하고 난방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 치료비 부담에 빚까지 졌지만 도움 요청 안 해
2일 서울 강서구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된 50대 부부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며 생활고를 겪기 시작했다. 이들은 의료비 부담으로 제3금융권에 빚을 지기도 했다.
이들처럼 예상하지 못한 의료비 부담으로 빚을 지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암, 뇌혈관, 심장질환, 희귀난치성 등 4대 중증질환자를 대상으로 질환 상태, 가구의 소득 및 재산기준, 의료비 수준을 고려해 본인 부담금의 50∼70%(최대 2000만 원)를 지원한다.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김민영 사무국장은 “이들 부부가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알고 신청했다면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 제도는 암 수술비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비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서도 각종 검사, 치료 등 의료서비스 비용을 최대 2회, 회당 300만 원 이내로 지원받을 수 있다.
주민센터는 이러한 ‘동아줄’을 알려줘야 할 사회복지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이들도 틈새 빈곤층을 찾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 3487곳을 모두 합쳐 사회복지업무만 전담하는 공무원은 7110명에 불과하다. 1인당 맡아야 할 복지 대상자는 814명이나 돼 한 달에 한 번 찾아가기도 어렵다.
또 새 복지제도를 소개할 때 동 소식지나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에 그치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복지 대상자가 고령이거나 컴퓨터 이용이 불편한 장애인인 경우 전화나 문서 등으로 직접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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