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無농약, 無비료… 자연의 힘으로 생명 키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6일 03시 00분


[新 명인열전]7년간 ‘자연농법 사과’ 재배 전남 장성군 전춘섭씨

전춘섭 씨가 5일 수확한 지 120여 일이 지났음에도 싱싱한 사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냉동보관이 아닌 실온에서 저장한 사과가 생명력도 더 강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춘섭 씨가 5일 수확한 지 120여 일이 지났음에도 싱싱한 사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냉동보관이 아닌 실온에서 저장한 사과가 생명력도 더 강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농부 전춘섭 씨(75)는 1965년부터 고향인 전남 장성군 남면 평산리에서 단감과 벼,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평생 땅을 일구고 살아온 전 씨에게는 특별한 자긍심이 있다. 자신이 힘들여 키운 안전한 농작물을 소비자들이 먹고 건강을 챙긴다는 것. 그는 제대로 된 사과와 단감,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가능한 한 그대로 둔 채 땅의 생명력을 살리는 농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자란 농작물이 사람의 생명을 되살린다고 믿고 있다.

사과는 병해충이 많아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지 않으면 재배가 힘든 작물. 전 씨의 사과나무는 농약과 비료 없이 자연 치유로 병해충을 이겨낸다. 사람들은 이 사과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기적의 사과’ 또는 ‘자연사과’라고 부른다. 비록 볼품은 없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병해충을 이겨낸 사과에는 49년 외길 농부의 자존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자연 먹으며 자란 사과나무

전 씨는 2007년 3월 1일 평산리 농경지 8100m²에 2년생 사과나무 700그루를 심었다. 이 농경지는 전 씨가 40여 년 동안 시설하우스와 단감을 재배하던 곳이었다. 그는 나무를 심을 때 땅을 1m 이상 깊게 팠다. 전 씨는 “땅을 파보니 30∼40cm 지점에 딱딱한 지층이 있었다. 그게 바로 오랫동안 써왔던 비료가 굳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화학비료가 딱딱하게 굳은 지층은 나무가 깊게 뿌리내려 튼튼하게 자라는 데 지장을 준다. 그는 딱딱한 지층을 모두 제거해 사과나무들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전 씨는 사과나무를 심은 직후 주변에 호밀과 헤어리베치 등 풀을 심었다. 풀이 자라면서 메뚜기와 개구리 등 생명이 되살아났다. 생명이 살아나면서 병해충도 함께 발생했다. 그는 농약 대신 현미식초를 2주마다 뿌렸다. 가을이 되자 호밀과 헤어리베치가 시들면서 퇴비가 돼 땅에 힘을 보탰다.

사과나무는 농약 대신 현미식초를, 비료 대신 시든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먹으며 자랐다. 나무를 심은 지 1년이 지난 2008년 병해충인 갈색무늬병이 찾아왔다. 잎이 모두 떨어지는 갈색무늬병은 사과나무에 치명적이다. 한 번 병이 돌면 3년 정도 사과 수확이 어렵다.

하지만 전 씨가 정성껏 심고 기른 나무는 스스로 갈색무늬병을 이겨내며 2009년 10월 첫 수확을 했다. 나무를 심은 지 3년 만에 사과 4000여 개를 수확한 것. 그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300그루를 베어내 나무가 햇살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도록 했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사과나무는 자연 면역력이 커졌다. 이렇게 자란 사과나무에는 2010년 1만3000개, 2011년 3000개, 2012년 5000개의 열매가 맺혔다.

전 씨의 사과나무 과수원은 인공수분을 하지 않는다. 또 새가 사과를 쪼아 먹는다. 농약과 퇴비를 쓰지 않는 데다 자연환경 그대로 재배해 수확량도 일반 과수원보다 떨어진다.

김월수 전남대 식물생명공학부 교수는 “식물이 병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천연 항균제(파이토알렉신)를 만든다. 자연사과는 알맹이가 단단한 데다 항산화 성분이 많아 쉽게 썩지 않는다”고 말했다.

○ 수확한 지 120일 지나도 싱싱

전 씨의 사과나무는 지난해 10월 말 5번째로 1만3000개의 사과를 선물했다. 당시 수확한 사과는 120여 일이 지난 5일에도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냉장보관이 아닌 실온보관이었지만 썩지 않았다. 전 씨의 자연사과는 일반사과보다 무게가 30% 정도 덜 나가고 단맛도 다소 떨어지지만 오랫동안 싱싱한 상태를 유지한다. 항암물질도 일반사과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조재형 장성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자연사과는 수확량이 적어 경제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전 씨는 이 모든 어려움을 끝내 이겨낸 농부다”라고 말했다.

전 씨가 자연사과를 재배하게 된 계기는 일본 아오모리 현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씨의 조언을 받고서다. 기무라 씨가 재배한 사과는 오랫동안 썩지 않아 ‘기적의 사과’라고 불렸다. 하지만 일본 아오모리 현과 장성군은 기후 여건과 토양이 다르다. 장성은 아오모리 현보다 덜 추워 병해충 발생이 잦다. 전 씨는 더 튼튼한 사과나무를 만들기 위해 해마다 해외의 선진 농사법을 찾아 배우고 있다.

전 씨는 사과와 같은 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그가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벼는 지난해 991m²(약 300평)당 470∼500kg을 생산했다. 일반 벼보다 5∼10% 정도 생산량이 많다. 전 씨는 사랑을 주고 키운 사과나무가 올해나 내년부터 더 많은 선물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의 진정한 농심(農心)을 보고 배워 자연사과를 따라 재배하겠다는 후배 농부가 전국적으로 10여 명이 생겼다. 전 씨는 “자연사과를 재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농약과 비료 오염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농법을 우리 땅에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춘섭#전남 장성군#자연농법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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