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김모 씨(38)는 딸(6)을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입소 신청을 한 것은 2010년 9월. 당시 대기 순번은 102번이었다. 순번은 정부가 정한 우선순위를 많이 충족할수록 앞당겨진다. 아이의 부모가 맞벌이, 한부모가족, 장애인,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족 등일 경우, 자녀가 3명 이상 또는 영유아 2명인 경우 등이 조건이다. 김 씨가 충족하는 조건은 영유아 자녀가 둘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언니가 운영하는 회사에 직원으로 이름을 올려서 맞벌이인 것처럼 서류를 위조했다. 조건을 충족하자 대기 순번은 40번대로 줄었다. 몇 달 더 기다린 끝에 아이를 국공립 시설에 보낼 수 있었다. ○ 엄마들은 왜 국공립을 선호하나
김 씨는 왜 서류까지 위조해가면서 아이를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을까. 그는 “아이를 1년 동안 가정어린이집에 보내 보니 도저히 믿고 맡길 수가 없더라”고 회상했다.
가정어린이집은 방이 세 칸 딸린 106m²(약 32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운영됐다. 책상은 베란다에 있었고 체육수업은 거실에서 진행됐다. 공간도 좁고 허술해 보였다. 당시 어린이집에선 자주 학부모들에게 추가 경비를 요구했다. 특별활동비도 10만 원을 호가했고 그달에 생일을 맞은 아이의 엄마들은 3만∼4만 원씩 갹출해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반면 지금 다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선 영어와 체육, 장구를 배우는 특별활동비를 3만4500원만 내면 된다. 보육 공간도 넓고 보육교사 12명, 조리사 2명, 공익근무요원 2명 등 많은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굳이 학부모가 생일상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경모 씨(37·여)는 2년 전 아이(5)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의 부정행위를 신고했다가 악몽 같은 나날을 겪었다. 당시 원장은 아이들을 방 안에 가둬놓거나 때렸다. 아이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경찰서에 신고했고 원장은 처벌을 받았다.
이후 다른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고 했더니 원장은 전에 다닌 어린이집을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입학을 거절당했다. 이전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이 원장을 고소했다는 게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경 씨는 또 다른 어린이집을 찾아 “멀리서 이사왔다”며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입학 허가가 났지만 오리엔테이션 때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불편한 게 있어도 밖에다가 발설하지 마세요. 그럴 경우 어떻게든 엄마 이름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힘들어질 거예요.”
○ 국공립 시설 더 과감히 늘리자
보육시설을 만드는 초창기부터 국가가 자원을 대폭 투입한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의 어린이집은 민간에 대거 의존하고 있다. 전국 어린이집 총 4만3770곳 중 국공립은 2332곳(5.3%)에 불과하고 민간·가정어린이집이 총 3만8383곳(87.7%)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어린이집에선 자본을 투자했으니 돈을 보전하고 이윤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니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부모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은 굳이 추가 이윤을 남겨서 투자비용을 회수할 필요가 없다. 특별활동비 등 필요 경비도 비교적 낮게 책정되고 급식의 질과 보육환경도 비교적 좋은 이유다.
정부는 지난달 3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150개소씩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약속한 대로 이행해도 국공립시설의 비율은 6%대에 그친다.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매년 150개로는 어림없다. 어린이집의 80∼90%는 국공립이어야 바람직하지만 안 되면 50%라도 되도록 수백 개, 수천 개씩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보육시설은 대부분 국공립이다. 스웨덴의 유아학교는 75%가 공립으로 운영되고 프랑스도 유아학교는 모두 공립이다.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국공립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어린이집의 관리감독을 엄격하게 해 부실한 어린이집이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유희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시설도 국공립시설처럼 투명하게 회계 관리를 해야 한다”며 “아이 한 명당 들어가는 보육료가 온전히 아이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민간어린이집은 정부의 평가인증을 원하는 곳만 자발적으로 받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모든 어린이집에 평가인증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유 연구위원은 “호주의 경우 평가인증을 통과하지 않은 곳은 국가에서 지원금을 아예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