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으로 바뀐 돌봄교실… 양질의 교육 대신 ‘시간때우기’전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올해부터 1, 2학년 신청자 전원 무상으로 실시하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지난해에 비해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신청 인원이 많아져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귀가 시 안전문제도 우려돼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일보DB
올해부터 1, 2학년 신청자 전원 무상으로 실시하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지난해에 비해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신청 인원이 많아져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귀가 시 안전문제도 우려돼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초등 무상 돌봄교실이 문을 연 지 보름이 지났다.

초등 무상 돌봄교실은 학교가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을 오후 10시까지 무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겠다는 것. 지난해까지는 저소득층, 맞벌이, 한부모 가정 자녀를 중심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초등 돌봄교실이 올해부터는 1, 2학년 신청자 전원 무상 돌봄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실상은 양질의 교육보다 단순히 아이들과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전락하고, 신청 학생에 비해 강사들이 부족해 안전 문제도 우려된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2015년까지 4학년, 2016년에는 6학년까지 무상 돌봄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학교 현장에서도, 돌봄교실을 신청한 학부모도 “이대로라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 “지난해보다 못한 돌봄교실”

13일 오후 서울 G초등학교.

이 학교는 돌봄 전용교실이 없어 오전수업이 끝난 1학년 4반과 5반을 돌봄 겸용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낮 12시 반이 되자 돌봄교사가 와 마룻바닥을 점검한 뒤 책상을 정렬하고 아이들을 맞았다. 한 반에 15여 명의 아이들이 교실 이곳저곳에 흩어져 각자 바닥에 엎드리거나 책상에 앉아 색칠놀이를 시작했다. 돌봄교사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하며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살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돌봄교실에서는 독서논술, 클레이아트, 바둑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가르쳤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지역교육청으로부터 ‘돌봄’만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실제 2013년 돌봄교실 지침에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프로그램 제공으로 사교육 수요 억제 효과’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올해 지침에서는 빠졌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강의할 수 있는 외부강사 선임료가 늘어나 예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돌봄교사 A 씨는 “겸용교실에서는 특별활동을 할 수 있는 재료도 없다”며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기보다는 아이들끼리 놀게 하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살핌 위주로 하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H초등학교는 올해 돌봄교실 신청자가 96명으로 늘어 5개 반으로 확대운영하려 했다. 하지만 돌봄교사를 구하지 못해 현재 4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TV, 소파, 냉장고, 싱크대, 조리기기 등이 설치되어 있고 온돌 마룻바닥인 돌봄 전용교실은 한 개뿐. 저녁돌봄을 신청해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이곳에 머무른다. 나머지 3개 반에서는 아이들끼리 책걸상에 무리지어 앉아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며 오후 5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돌봄교실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이선혜 씨는 “지난해 돌봄교실의 질을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은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해에는 집처럼 아늑한 공간에서 돌봄교사가 학교 숙제를 도와주고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M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올해 3학년 이상 신청자를 받지 않았다. 1, 2학년 신청자를 모두 수용하다 보니 교실과 강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돌봄교실 신청자가 폭증한 대다수의 학교에서 3학년을 포함한 고학년 학생들은 당분간 돌봄교실 이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김승인 씨는 “아이가 지난해까지 돌봄교실을 다녔는데 올해 3학년이 되니 갑자기 이용을 못하게 돼 대신 여러 학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하진아 씨도 “돌봄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면 20만∼30만 원을 들여 학교 방과후수업을 매일 듣게 하고, 저녁시간에는 따로 학원에 가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 “안전 문제도 우려”

돌봄교실이 끝난 후 귀가하는 아이들에게 안전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커졌다.

지난해에는 저녁을 먹지 않는 아이라도 학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 돌봄교사가 교실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오후 1∼5시에 4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돌봄교사가 담당하는 돌봄 겸용교실의 경우 학부모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어렵다. 시간제 돌봄교사는 근무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면 교실 문을 닫아야 하고, 돌봄교실 최대 수용인원이 20명에서 25명으로 늘어 일일이 학부모가 왔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부모 공인 씨는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있는데 학부모에게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돼 아이가 홀로 남겨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돌봄교실을 신청한 1, 2학년 장애학생을 돌보는 특수교육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서울 H초등학교의 경우 올해 처음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 한 명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학생 두 명이 돌봄교실에 들어왔다. 하지만 돌봄교사 중 특수교사가 없는 데다 교사도 장애학생에게만 신경을 쓸 수 없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불만이다. 돌봄교사는 교실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학생이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교사 도움 없이 혼자 가거나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많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초등 돌봄교실 상황반을 만들어 3월 말까지 시설 부족이나 돌봄교사 부족, 관련 민원 발생 처리 상황을 조사하겠다. 돌봄교실에 대한 예산도 추가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초등 무상 돌봄교실#저소득층#맞벌이#한부모 가정#안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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