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이 김울산 여사(1858∼1944·사진)를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김 여사는 일제강점기 대구 교육에 큰 공을 세웠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울산에서 태어난 김 여사는 1910년 대구 중구 남산동에 설립된 대구명신학교가 운영난을 겪자 1926년 8만 원을 들여 인수한 뒤 ‘복명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광복을 소원하는 뜻을 담아 ‘복명(復明)’으로 지었지만 그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당시 8만 원은 쌀 4000섬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복명초교는 도심 공동화로 학생이 감소해 1998년 폐교된 뒤 1999년 수성구 범물동으로 이전 개교했다.
김 여사는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9세에는 남편과 사별한 뒤 정미소와 술집을 운영하면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명초교뿐 아니라 대구 첫 초등학교인 희도학교(현 종로초교)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대구지역 이재민 돕기에도 정성을 쏟았다. 대구 북구 조야동 금호강변에 그의 묘와 공덕비가 남아있다.
대구교육청은 다음 달 김 여사의 삶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비롯해 교육기부자를 대상으로 ‘김울산 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대구 교육에 헌신한 여사님이 그동안 잊혀져 송구스럽다”며 “교육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오래도록 빛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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