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광주 서구 치평동 무각사 앞 마당에서 열리는 재활용 장터 ‘보물섬’. 장터는 자원 순환을 통해 환경을 지키고 나눔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무각사 제공
광주 서구 상무지구 번화가 맞은편에는 ‘여의산’으로 불리는 낮은 동산이 있다. 이곳에는 삭막한 도심과는 다른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 수행 사찰이면서도 문화예술의 향기가 피어나는 절 ‘무각사’다. 절 주변 노란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무각사 재활용 장터인 ‘보물섬’도 기지개를 켠다. ○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웃음꽃
보물섬이 열리는 토요일 절 앞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로 북적인다. 마당에 벌여 놓은 좌판과 탁자에는 동화책, 장난감, 가방, 소형 장식품, 유아용품 등이 수북이 쌓인다. 시민들이 가지고 나온 중고 물품들이다. 상인이 된 어린이들은 “이것 좀 사세요”라고 외치며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유행이 지나 잘 입지 않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팔러 온 젊은이들, 직접 캔 나물과 달걀 꾸러미를 들고 온 농부도 있다. 장터를 찾은 사람들은 구경을 하면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 좌판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닌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핀다.
보물섬은 2009년 3월 무각사 주지인 청학 스님의 제안으로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과 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시작했다. 어느덧 6년째를 맞은 장터는 무분별한 소비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생활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나눔문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보물섬은 한겨울 1∼2월과 여름 7∼8월,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린다. 토요일 오전 9시까지 무각사 앞 창구에서 접수시키면 누구나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 판매대금의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할 수도 있다. 올해는 8일 처음 개장했다. 지난해에는 모두 29차례 열려 1회 평균 60여 팀이 참여했고 구매자는 300명 정도 됐다. 기부금도 1100만 원이나 거뒀다. 이정범 무각사 문화관장(56)은 “재활용 장터는 자원 절약과 나눔, 환경을 지키는 뿌듯함까지 누릴 수 있는 말 그대로 보물섬”이라고 말했다.
○ 종교 경계 넘어 나눔 문화 전파
15일 열린 장터에서는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 사는 주정필 씨(57)가 단연 화제였다. 매주 장터에 나와 시골에서 재배한 야채와 나물 등을 파는 주 씨는 이날 시골 민박집을 팔겠다고 나섰다. 2004년 4월에 지은 270m²의 대지에 건평 35m²인 집을 4500만 원에 내놓은 것. 주 씨는 “구들방이어서 불을 지피면 방도 따뜻하고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재활용 장터를 이용하는 사람한테는 싸게 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무각사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지난해 경내에 연중 운영하는 ‘나눔가게’를 열었다. 기증한 물품을 전시하고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무인 판매 형식으로 물품마다 최소한의 기준 가격표를 붙여 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성금함에 넣도록 했다.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은 “프랑스 파리 길상사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우리 스스로가 자원을 아끼고 욕심을 덜어내자는 의미로 장터를 시작했는데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터 하면 역시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경내 문화공간인 ‘로터스’ 맞은편 공양간에서 파는 장터국수(1000원)와 부침개(2000원)는 값도 싸고 맛도 일품이어서 매번 길게 줄을 선다. 공양간 옆 한옥 ‘사랑채’에서는 발우 비빔밥과 수제비, 전통 차 등을 판다. 무각사는 나눔 행사도 수시로 펼치고 있다. 신도들이 꾸린 자비봉사단은 매년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사찰음식 경연대회를 연다. 대회에 출품된 음식들은 소방대원, 환경미화원 등에게 제공한다. 062-38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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