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 “멈춰”에 버스기사 “어, 어” 지그재그 달리며 꽝꽝… 공포의 폭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19일밤 잠실서 잇단 충돌 19명 사상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시내버스 1대가 심야에 ‘광란의 질주’를 벌여 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사망한 사고 버스 운전사는 “멈추라”는 승객들의 제지에도 정해진 경로를 벗어난 채 계속 질주해 사고 원인을 두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염모 씨(60)가 모는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 3318번(강동공영차고지↔마천동)은 19일 오후 11시 43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사거리 잠실역 방향 6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쏘나타 택시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택시 앞에 서 있던 다른 택시 2대도 연쇄 추돌했다. 버스는 사고를 내고도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해 610여 m를 이동한 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잠실역사거리에서 송파구청사거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질주를 이어갔다. 버스는 6차로 도로 580여 m를 지그재그로 휘젓고 달리며 5차로에 있던 차량 3대를 잇따라 들이받고 다른 차로에 있던 차량 2대도 연쇄 추돌한 뒤 4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30-1번 시외버스의 오른쪽 뒤편을 들이받고 나서야 질주를 멈췄다. 30-1번 버스가 충격의 여파로 25m가량 밀려났을 만큼 강한 추돌이었다. 3318번 버스는 1차 사고를 낸 뒤 1.19km를 더 달렸으며 목격자들은 추돌 당시 60km 이상의 속도로 주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고로 3318번 버스 운전사 염 씨와 30-1번 버스 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이상열 씨(19)가 숨지고 이 씨와 함께 맨 뒤에 타고 있던 대학생 장희선 씨(19·여)가 의식을 잃어 중태에 빠지는 등 17명이 다쳤다. 장 씨 가족은 20일 장 씨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병원 진단을 받자 뇌사 확정판정이 나면 장 씨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3318번 버스 승객 김모 씨(44)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승객들이 버스 운전사에게 ‘버스를 멈추라’고 계속 소리쳤는데 기사가 ‘어? 어?’라고만 하면서 차를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30-1번 버스 운전사 김모 씨(42)는 “신호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나면서 아비규환이 됐다”며 “버스가 온통 피투성이였다”고 말했다.

○ “기계 결함?” vs “운전자 신체 이상?”


동아일보 취재팀이 20일 3318번 버스를 확인해보니 오른쪽 앞 타이어가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타이어 3개는 멀쩡했다. 운행 중 타이어 한쪽이 펑크 나면 차량이 좌우로 쏠리는데 3318번 버스도 사고 직전 지그재그로 질주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타이어가 1차 사고 전에 찢어졌다면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확한 펑크 시점을 분석 중이다.

버스 운전사 염 씨가 승객들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당황한 점을 두고 브레이크 고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3318번 버스는 사고 직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가 고장 난 것으로 밝혀져 브레이크 등 다른 기계가 고장 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버스 회사 측은 “해당 버스는 사고 전날인 18일 기능점검을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 현장에 스키드 마크(차량이 급정거할 때 도로면에 생기는 검은 자국)가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직후 3318번 버스를 뒤따라오던 다른 버스에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3318번 버스가 정해진 경로를 이탈해 돌연 우회전한 잠실역사거리에는 스키드 마크가 선명했다. 하지만 이 스키드 마크가 3318번 버스로 인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스키드 마크가 3318번 버스의 영향인지 확인할 방침이다.

사고 직전 염 씨는 1차 사고 지점에서 300여 m 떨어진 중앙버스전용차로 1차로 정류장에서 승객을 내려준 뒤 돌연 6차로로 이동해 정차했다가 50m가량을 돌진해 앞에 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주변에서 수차례 “버스를 멈추라”고 고함치며 제지했지만 질주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 염 씨가 갑자기 신체 이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염 씨는 16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했을 만큼 건강했지만 사고 당일 14시간 동안 운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3318번 버스의 블랙박스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으며 운전사 염 씨가 갑작스러운 신체 이상을 일으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임현석 ihs@donga.com·홍정수·박성진 기자
#버스사고#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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