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자영업자 울리는 ‘짝퉁 114’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KT 우선번호안내’ 사칭… 업체에 가입요금 수십만원씩 챙겨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KT114 전화국입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박모 씨(45)는 3월 5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kt 직원이라고 밝힌 상담원은 박 씨에게 “114 이용자가 해당 지역 부동산 문의를 할 경우 고객님의 업체를 먼저 안내해주는 서비스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상담원은 선심 쓰듯이 저렴한 비용에 인터넷 ‘블로그 광고’까지 해준다며 경쟁 업체들이 가입하기 전에 얼른 가입하라고 박 씨를 설득했다. 업체 홍보가 간절했던 박 씨는 ‘114 우선번호안내서비스’에 인터넷 광고까지 해준다는 말을 듣고 2년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 박 씨가 카드로 39만6000원을 결제한 뒤 일주일이 지났지만 광고 효과는 전무했다. 고객 방문도 늘지 않고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업체에 대한 어떠한 광고 글도 찾을 수 없었다. 수상하게 생각한 박 씨는 19일 업체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업체 측은 “우리들은 KT와 관련이 없다”며 지불한 비용을 전액 환불해줬다.

KT의 114 우선번호안내서비스를 사칭해 자영업자들로부터 수십만 원을 챙기는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올해 들어 유사한 사기 피해를 본 자영업자만 수십 명에 이르렀다. 지역, 업종을 불문하고 피해가 확인됐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 건수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114 우선번호안내서비스는 114 이용자가 업종 또는 불특정 상호로 문의할 때 우선번호안내 가입 고객의 전화번호를 안내해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강남역 근처 꽃집 알려주세요” “혜화동 부동산이오” 등의 문의가 접수되면 114 상담원은 우선번호안내서비스에 가입한 업체 중 한 곳을 알려준다. 일부 영업대행사가 우선번호안내서비스의 영업 및 가입자 관리 등 서비스를 대행하지만 정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KT의 자회사인 ktis(서울·경기·인천·강원권 담당)와 ktcs(충청·경상·전라·제주권 담당) 등 두 군데뿐이다.

114 우선번호안내서비스를 사칭하는 업체들은 KT△△, 114▲▲ 등의 유사 상호명으로 고객을 혼동하게 해 영업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이런 업체들은 실제 인터넷·모바일 광고업체로 114를 사칭해 서비스를 안내한 뒤 블로그 광고나 포털사이트 검색 광고 등을 함께 제공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고객이 가입 후 환불을 요구할 경우 인터넷에 올린 블로그 광고를 보여주며 실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객의 항의가 거세지면 빠르게 환불 처리를 해줘 대부분 환불을 받은 고객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본 광주의 한 산부인과 원장 A 씨는 “업체에 직접 전화하기 전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며 “당하고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KT를 사칭하는 업체들의 사기 상술에 대해 ktcs 측은 사법 처리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ktcs 관계자는 “KT나 114라는 이름이 상표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어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신고를 받고 (사칭)업체들에 연락을 하면 자신들은 광고 제작 등 정당한 영업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ktcs 측은 우선번호안내서비스 사칭 피해가 늘어남에 따라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사칭 주의’ 안내문을 발송하고 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114#KT 우선번호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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