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놀며 벌써 15억 탕감받은 회장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교도소 일당 5억 노역’ 허재호 前 대주회장… 시민들 허탈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72)이 벌금 254억 원을 면제받기 위해 노역장 유치를 선택해 22일 수감된 뒤 사흘 만에 15억 원을 경감받았다. 이는 하루에 5억 원씩 벌금을 감해 주기로 한 법원 결정 때문. 특히 허 전 회장은 건강검진 등을 이유로 사흘간 노역도 하지 않았다. 허 회장의 노역장 유치일은 50일에 불과해 긴급체포된 기간(1일)과 22∼24일을 빼고 앞으로 46일만 노역장 생활을 하면 벌금을 내지 않는다.

형법은 벌금을 미납할 경우 1일 이상 3년 이하 동안 노역장에 유치해 하루 얼마씩 감경해주는 환형유치(換刑留置) 제도를 두고 있다.

원래 이 제도는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에겐 도시 일용노동자의 일당에 해당하는 5만∼10만 원이 적용된다. 노역 일수가 길면 벌금을 내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그룹 총수와 같이 부유한 사람에겐 유치기간을 짧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얼마씩 감경할지는 법원의 재량이어서 그 액수가 고무줄처럼 달라진다. 실제로 1심에서 벌금 2340억 원을 선고받은 ‘선박왕’ 권혁 회장의 1일 환산금액은 3억 원(780일), 벌금 260억 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1억 원(260일)이었다.

허 전 회장은 전산회계를 조작해 법인세 508억 원을 탈세하고 회삿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횡령)로 기소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범죄에 대해서는 포탈세액의 2∼5배의 벌금형을 반드시 병과(자유형과 함께 선고)하게 돼 있다. 즉, 허 전 회장은 최소 1016억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광주지법 형사2부·당시 부장판사 이재강)는 벌금을 가산하지 않고 포탈세액만큼인 508억 원으로 정했다. 허 전 회장이 포탈세액 중 818억 원을 납부한 점과 횡령죄의 피해 법인이 허 전 회장의 개인회사이기 때문에 책임이 크지 않다며 ‘작량감경(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덜어주는 것)’을 한 것. 일당을 2억5000만 원으로 계산해 203일 동안 노역하게 했다.

2010년 항소심에선 다시 벌금을 1심 판결의 절반으로 깎았다. 이번엔 허 전 회장이 구속을 면하려고 조세포탈 혐의를 인정한 점을 들어 ‘자수감경’ 카드를 꺼냈다. 피의자가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자백한 것을 ‘자수’로 본 것이다.

검찰은 항소심 당시 벌금 1016억 원을 구형하면서도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항소심을 한 광주고법 관계자도 “검찰의 요청대로 선고유예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중한 형을 내리기 위해 벌금형을 내리는 대신 감경 액수를 높인 것”이라고 말했다.

허 전 회장의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ID ‘@min***’를 쓰는 트위터리안은 “같은 벌금형을 받아도 일반 국민은 1364년, 먹튀 회장은 49일. 만 배가 넘는 차이”라고 했다.

범죄자의 죄목에 정한 벌금 일수(日數)에 경제적 상태를 고려한 1일 벌금액을 곱하는 방식으로 전체 벌금액을 산정하는 ‘일수벌금제’가 1992년부터 국회에 논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허재호#교도소#대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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