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관석]국익과 법치… 가치충돌이 빚은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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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의혹’ 수사 어디로]

장관석 기자
장관석 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한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이 나흘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권 과장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검사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금 뭐하는 거냐”며 반말을 했다. 이에 항의하자 검사는 “‘요’자를 붙였는데 못 들었느냐”고 한발 물러섰다. 권 과장은 “그게 인권이냐. 변호사도 다 들었으니 조서에 그대로 남겨 달라”고 되받아쳤다.

이 사실은 1시간 단위로 보고를 받던 수사팀 고위 간부에게 보고됐다. 자초지종을 들은 고위 간부의 지시로 검사는 권 과장에게 사과했다. 권 과장도 “고맙다”고 말하고 마무리됐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 도중 권 과장은 끝내 조사실을 뛰쳐나갔고 자살을 기도했다.

예우 문제를 둘러싼 사소한 말싸움일 수도 있지만 조사 분위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는 두 권력기관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서로 다른 데서 빚어진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기관으로선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중요 정보를 놓쳐선 안 된다. 자그마한 정보 하나가 나라의 안위와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떨 때는 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반면 검찰은 법치(法治)의 실현을 위해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하는 기관이다. 궁극적으로 검찰도 국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재판제도를 뒤흔든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권 과장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한 일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는 ‘가치 충돌’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권 과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법의 잣대’로만 바라본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협조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팩스 하나를 보낼 때도 추적을 피하고 약속한 시간에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위조 의혹이 제기된 문서의 입수 경로를 의심하며 요원과 협조자가 서로 짜고 증거를 조작한 것은 아닌지 가리는 일은 검찰의 엄연한 직무다.

국익과 법치라는 두 개의 큰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권 과장은 결국 자살 기도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두 기관은 이번 사건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환골탈태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장관석·사회부 jks@donga.com
#간첩사건 증거 조작#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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