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72·사진)의 ‘일당 5억 원짜리 황제 노역’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이 노역장 유치를 즉각 중단하고 벌금에 상당하는 허 전 회장의 재산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대검찰청 핵심 관계자는 “허 전 회장이 벌금 254억 원 미납으로 노역을 하고 있는 만큼, 벌금을 납부할 수 있는지 그 재산을 찾는 게 우선”이라며 “일단 수사에 준하는 방법 등을 통해 재산을 찾아내 납부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런 방안이 법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 전 회장이 재산이 있는데도 벌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김상훈 광주전남지부 지부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허 전 회장이 2년 전 뉴질랜드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했고, 대주건설의 뉴질랜드 법인이라는 KNC가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과연 벌금 낼 형편이 못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법원도 벌금의 환형유치(벌금 대신 교도소에서 일하게 하는 것) 제도의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대법원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일수(日數)벌금제’를 비롯해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벌금을 대체할 하루 일당이 법관 재량에 맡겨진 것을 고쳐 특혜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 총액벌금제와 일수벌금제
현행 형법의 ‘총액벌금제’는 벌금액을 정한 뒤 만약 내지 못할 경우 노역장에 유치한 뒤 하루 일정액을 감경하도록 돼 있다. 노역장 유치는 3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하루 벌금 감경액이 5억 원에 달하는 허 전 회장의 경우처럼 법관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고무줄 결정’으로 인한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는 일수벌금제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1일 벌금액을 다르게 정하는 제도다. 범죄 죄목에 따라 벌금 일수를 먼저 정하고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벌금액을 곱해 전체 벌금액을 정한다. 유치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환형유치 특혜 시비를 차단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서로 다른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 1921년 일수벌금제를 최초로 도입한 핀란드에선 부유층에 대해 1억∼2억 원짜리 교통위반 딱지를 끊기도 한다. 현재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일수벌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부자의 100만 원과 가난한 사람의 100만 원은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벌금액을 똑같이 적용하면 개인의 ‘부(富)’에 따라 ‘형벌 효과’의 불평등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선 범죄와 관련이 없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반박한다. 양형에 참작하는 현행 제도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일수벌금제는 1992년 형사법 개정 때 처음 논의돼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2009년 18대 국회에서 도입이 논의됐지만 개인의 경제적 사정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대법원은 일수벌금제의 장점과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8일 열리는 전국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 환형유치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 허 전 회장의 ‘문어발’ 법조계 인맥
허 전 회장이 ‘5억 원 일당’을 선고받은 데 대해 광범위한 법조계 인맥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있다. 허 전 회장의 아버지(1998년 작고)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장, 목포지원장을 지냈다. 허 전 회장은 9남매 가운데 장남이고 허 회장의 사위는 현직 판사, 매제는 광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냈다.
허 전 회장의 동생 A 씨는 2000년대 중반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 ‘법구회’ 스폰서로 알려져 있다. A 씨는 이 모임에서 가명으로 골프 예약을 해주거나 식사비와 유흥비를 지원하면서 사실상 총무 역할을 해온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