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1시경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 해양경찰청 버스에서 30, 40대 해경 경찰관 28명이 내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국 16개 해양경찰서에서 경비함을 타고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을 단속하거나 각종 해양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조 작업에 나선 경험이 있다는 것. 이들은 단속이나 구조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은 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을 앓고 있는 경찰관들이다.
해양경찰청은 PTSS를 겪고 있는 경찰관을 치유하기 위해 최근 산림청과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이날 첫 번째 대상자들이 자연휴양림에 온 것이다.
해경은 과거 해상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로 인해 불면증과 악몽, 우울증, 슬픔, 의욕상실 등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찰관의 참가 신청을 받았다.
그 대신 동료들의 시선이나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하는 일이 없도록 참가 자체를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28명 중에는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에서 숨진 292명의 시신을 인양하는 데 투입됐다가 불면증으로 20년 넘게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찰관이 지원했다. 또 대형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를 수습하는 데 투입돼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경찰관 6명도 포함됐다.
2010년 11월 연평도에 근무할 때 북한의 포격 도발을 경험한 뒤 악몽과 환청 등에 시달리다 2012년 5월 PTSS와 대인기피증 등을 진단받아 고통을 겪어온 임수현(가명·40) 경장도 신청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A 경사 등 중국 어선 나포 임무를 수행하다가 부상을 입은 경찰관 11명이 휴양림을 찾았다.
이들은 28일까지 휴양림에서 머물며 심리 및 명상 치료를 받는다. 이들은 첫날 스트레스 지수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심박동변이도(HRV) 검사’를 받았다. 이어 숲 속 오솔길을 걸으며 ‘오감으로 숲 느끼기’를 체험하고, 밤에는 숲에서 명상하며 그동안 지친 심신을 달랬다.
둘째 날에는 산림욕 체조로 일과를 시작해 스트레스 알아차리기와 낮잠 즐기기, 숲 에너지 재충전하기, 향기마사지, 자신에게 편지 쓰기에 참가한다. 마지막 날에는 HRV 검사를 다시 받는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동아일보 1월 6일자에 국내 MIU(소방관 경찰 군인 등 제복을 입은 공직자)가 PTSS에 시달린다는 탐사보도를 보고 그동안 해경도 이들의 관리에 소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며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측정해 다양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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