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몽골서 황사 발원… 베이징선 4월 미세먼지 조짐도
車 공급량 年 15만대로 줄였지만… 공장 매연-공사장 먼지 속수무책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올해 2월 베이징(北京)에 온 주부 K 씨(50)는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눈과 코를 의심했다. 공기가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불과 몇 m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공항이 짙은 매연에 싸여 있는 데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쉬기가 불편해지고 갑자기 심한 구토가 났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공항 직원들도 낯선 모습이었다.
집을 구하기 전 임시로 머문 차오양(朝陽) 구 왕징(望京)의 한 호텔에 도착한 K 씨는 교민으로부터 “18년간 베이징에 살았지만 올해 같은 오염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관지가 예민해 한국에서도 봄철 꽃가루가 조금만 날려도 괴로워했던 K 씨는 요즘 길을 걸으면서 토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악화됐다.
3월 16일 베이징의 중앙난방 공급이 중단돼 난방용 연료 사용이 줄어 대기 상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4월이 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K 씨는 혼자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2011년 말 3년간의 베이징 근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2년여 만에 다시 돌아온 일본인 A 씨는 지난해 말 신체검사에서 “폐가 시꺼멓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업무상 실외 활동이 많은데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탓이다.
2월 20일부터 26일까지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寶)와 톈마오(天猫)에서는 21만7000명이 마스크를 구입했다. 이는 전주에 비해 110%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최고 가격 3000위안(약 56만 원)짜리인 각종 공기정화기도 4만6000여 대가 팔려 매출이 전주에 비해 79.6% 늘었다. 베이징에선 마스크 착용, 실외 활동 축소, 공기정화기 가동이 일상에서 꼭 필요한 일이 돼 가고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의 협공
봄을 맞아 기온이 올라가면 땅이 건조해져 베이징에는 불청객 황사의 계절이 다가온다. 지난달 17일에는 몽골을 발원지로 한 첫 황사가 찾아와 시 평균 PM10의 농도가 418μg까지 올라갔다. 서북부 딩링쯔(定陵子) 전철역 부근은 895μg까지 치솟았다.
그 후 황사는 잠시 소강 상태지만 4월 들어 황사 발생이 잦아질 것으로 베이징 시 기상국은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온이 오르면 공기의 유동 속도가 빨라져 미세먼지의 확산이 본격화되는 데다 봄철 황사까지 겹쳐 일정 기간 황사와 미세먼지가 베이징을 협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국 기상당국은 황사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네이멍구(內蒙古)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53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네이멍구 자치구 기상국은 지난달 31일 “3월 네이멍구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1mm에도 못 미치는 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1961년 기상 관측 이래 3월 강수량으로는 가장 적은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멍구 지역의 3월 평균 강수량은 0.5mm로 예년보다 4.6mm가 적다. 반면 평균 기온은 예년보다 2.2도 높은 영하 1.1도였다. 황사 발생의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자동차 구매 제한으로도 역부족
베이징에는 올해 들어 2월 20일과 3월 24일 3단계 미세먼지 오염 경보 중 가장 낮은 단계인 황색경보가 울렸다. 황색경보는 24시간 이내에 가시거리가 3000m 이내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오염 발생 시 발령하는 것으로 어린이나 노인 등은 외출을 줄이도록 권고한다.
우샤오칭(吳曉靑) 환경보호부 부부장은 지난달 8일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대기오염의 근본 원인으로 난방 연료,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매연, 건축 공사장과 도로의 먼지 등을 꼽았다. 또 늘어난 오염물질이 겨울철 찬 공기의 세력이 약해 쉽게 누적되는 기상 조건, 오염물질이 쉽게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지형적 조건도 ‘직접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베이징에 인접한 허베이(河北) 성 등에서 오염물질이 날아와 가세하는 것도 ‘추가적인 요인’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은 2008년 8월 올림픽 때부터 도입한 차량 5부제를 아직까지 시행하고 있다. 2010년 12월부터는 추첨을 통해 1개월에 2만 개의 번호판(개인용 업무용 공공용 등 포함)만 발부하는 등 차량 구매도 제한하고 있다. 1년에 새로 구입하는 자동차가 24만 대를 넘지 못하도록 조절해 공기오염원을 줄이겠다는 조치다.
올해부터는 짝수 달에만 추첨으로 2만5000개의 번호판을 내주는 등 한 해 공급량을 15만 대로 줄였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받을 가능성은 ‘로또 당첨’과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개인용 차량의 경우 올 2월 추첨에서 할당된 번호판은 2만195개였지만 신청자는 181만8640만 명이나 됐다. 베이징 시는 지난해 말 530여만 대였던 승용차를 2017년 600만 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공장 매연이나 공사장 먼지 등 다른 요인을 막지 못하고 자동차만 단속해서는 오염을 줄이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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