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무허가 판자촌인 서울 서초구 명달로 ‘산청마을’의 철거 전 모습. 거주민과 인근 빌라 주민, 서초구가 서로 도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면서 올해 6월이면 녹색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서초구 제공
8일 서울 서초구 명달로(서초3동) 서리풀근린공원 입구. 주택공시가격이 최고 50억 원이 넘는 최고급 빌라인 ‘트라움하우스’ 등이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부자 동네다. 그 뒤편 산비탈에 펼쳐진 풍경은 대조적이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초라한 무허가 판잣집이 어지럽게 펼쳐 있었다. 군데군데 나무가 베인 땅에는 흙먼지가 뽀얗게 일었고, 철거된 집 사이사이에는 쓰레기더미가 가득했다. 서울 강남권의 대표적 무허가 판자촌인 ‘산청마을’이다.
산청마을이 6월 말 자취를 감추고 ‘녹색공원’으로 조성된다. 도시계획사업에서 흔하게 펼쳐지는 강제집행과 철거투쟁의 극한 대립은 없었다. 판자촌과 인근 주민, 서초구가 힘을 합쳐 얻어낸 결실이다.
산청마을은 1970년대 영동지구택지개발사업으로 철거된 이주민들이 서초동 산 160번지 일대 임야 2만3220m²에 들어와 살면서 형성됐다. 그러나 수십 년간 방치되면서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여름이면 악취가 발생했고 겨울에는 화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서초구는 보상 및 공원조성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거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가구당 평균 3300만 원의 보상금으로는 현실적으로 주민들이 옮겨갈 곳이 없었다.
2010년 11월 화재로 53가구 가운데 18가구가 소실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공원용지에 무허가로 세운 건축물이어서 법적 보상은 불가능했다. 거주민들은 화재 피해민들에 대한 보상 없이는 이주할 수 없다며 집단으로 맞섰다. 2011년 보상을 위한 예산 36억 원을 확보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사업비 반납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초구와 인근 주민이 힘을 모았다. 거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현실적인 보상책을 찾던 서초구 측은 ‘서울시 도시계획사업 철거민 특별공급제도 시행지침’을 찾아냈다. 도시계획사업에 따른 영세철거민들이 재개발임대주택을 받을 수 있도록 2012년 6월에 만든 지침이었지만 홍보가 되지 않아 지금껏 적용된 적이 없었다.
서초구는 거주민들의 소득수준과 가족 구성을 일일이 조사하고 SH공사와 협조해 3000만 원으로 입주가 가능한 재개발임대주택을 지원했다. 재산이 있어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가구에게는 저리의 전세자금융자 알선 등 취약계층 지원사업을 병행했다.
트라움하우스 등 인근 주민들은 법적 보상이 불가능한 화재 피해민 18가구를 위해 성금 6억 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올해 2월 전달했다. 그 덕분에 18가구는 재개발임대주택, 8가구는 장기전세주택, 5가구는 LH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주했다. 다른 11가구도 전세자금 지원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전순안 씨(64·여)는 “맨몸으로 쫓겨날 것 같아 암담했는데 새 아파트로 들어가게 됐다. 화재로 집을 잃은 이웃에 대한 마음의 짐도 덜어 행복하다”며 배려해준 서초구와 인근 빌라 주민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판자촌 주민들은 안정적인 주거지를 얻어 재기를 꿈꿀 수 있게 됐고 인근 주민들은 공원을 돌려받게 됐다”며 “강제적 행정절차 없이도 민관이 합심해 행복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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