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수 씨가 양조장 발효실에서 지에밥과 누룩을 섞고 있다. 그가 만든 ‘타미앙스’(오른쪽 아래 사진)는 최근 세계 3대 주류품평회 가운데 2개 대회에서 상을 받아 세계 명주 반열에 올랐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제 하나만 남았네요.”
8일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추성고을’이란 술도가를 운영하는 양대수 씨(58)는 약간 들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전통주 ‘타미앙스(TAMIANGS)’가 한 달 새 세계 3대 주류품평회 가운데 2곳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이날 전해 들었다. 세계 3대 주류품평회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 벨기에 브뤼셀의 몽드셀렉션, 영국 런던의 국제주류품평회가 꼽힌다. ‘타미앙스’는 지난달 열린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대상인 ‘더블골드’를 수상했다. 품평회에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1474종의 술이 출품됐다. 주류 평론가, 바이어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33명은 술맛을 보고 ‘원더풀’을 외쳤다. 3주 후에 열린 몽드셀렉션에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대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독특한 제조 비법과 오랜 숙성을 통해 나온 황금 빛깔에 매료된 심사위원들은 ‘그랜드골드’ 메달을 선사했다. “6월 런던에서 열리는 품평회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여기서도 최고상을 타면 우리 전통주가 당당히 세계 명주 반열에 오르게 될 테니까요.”
○ 5대째 이어가는 술도가
양 씨의 술도가에는 120년 넘게 전해 내려오는 비방이 있다 ‘추성주(秋成酒)’라는 전통주 제조 기법이다. 양 씨 증조할아버지가 족자에 300여 자의 한자로 써 놓은 것을 할아버지가 한글로 풀어 쓴 것이다.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 추성주도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았지만 비법을 고이 간직한 덕에 ‘전통 명주’로 재탄생했다.
양 씨는 20년 전 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농협에 다니던 그는 1998년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양조장을 차렸다. 부인 전경희 씨(58)와 함께 ‘가문의 비법’을 익혀 나갔지만 복원은 쉽지 않았다. “추성주는 한약재가 첨가되기 때문에 술을 빚는 과정이 까다로워요. 한약재마다 달이거나 찌고 볶는 방식이 제각각이거든요.”
약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추성주를 빚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2년 가까이 대학과 연구기관, 한약방을 찾아다니며 약재 연구에 매달렸다. 구기자와 갈근 등은 달이고, 오미자와 우슬 등은 볶고, 연뿌리는 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술을 빚어 주위 사람들에게 맛을 보였는데 ‘술이 싱겁다’, ‘냄새가 난다’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숙성 과정을 조절하고 약초 분량을 가감하는 등 노력한 끝에 2000년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 씨 가문의 ‘술 빚는 솜씨’가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양 씨는 “지문이 지워질 만큼 멥쌀을 씻고 산비탈을 오가며 약초를 캐온 아내가 없었다면 추성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아들 재창 씨(32)가 기능전수자로 나서 가양주(家釀酒)의 맥을 5대째 잇게 됐다.
○ 전통주를 세계 명주로…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타미앙스’는 ‘추성주’의 형님뻘이다. 도수는 천연암반수를 얼마나 넣어 희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00일 이상 발효시킨 후 10년 이상 숙성시킨 타미앙스는 연간 1000병 정도만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술 이름은 ‘담양(Damyang)’을 프랑스어 식으로 명명한 것이다. 술맛은 어떨까. 묵직한 첫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 깔끔한 뒷맛이 혀를 감싸며 오감을 자극했다.
양 씨에게는 ‘전통주 세계화’라는 꿈이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했다. “외국의 유명 와인이나 위스키는 숙성 기간을 표시해 신뢰감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충 몇 년 정도 됐을 거라고 하고 판매합니다. 오크통과 같은 규격화된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죠.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어필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 영세한 전통주 제조업체는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맛의 30%는 재료에서, 나머지는 정성에서 나옵니다.” 산세 좋고 물 좋은 추월산 자락에서 빚어진 술은 양 씨의 당찬 꿈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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