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고려인 성악가 류드밀라 남을 추모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러시아 대사관서 음악회 개최… 이연성씨 7년째 행사 주도
“조만간 15곡 음원 담아 CD 발매”

러시아에서 유학한 음악가들이 11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러시아 인민배우인 고려인 류드밀라 남 성악가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이 추모음악회를 주도하고 있는 성악가 이연성 씨(가운데).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러시아에서 유학한 음악가들이 11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러시아 인민배우인 고려인 류드밀라 남 성악가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이 추모음악회를 주도하고 있는 성악가 이연성 씨(가운데).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11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덕수궁 뒤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러시아 유명 성악가를 기리는 이색 음악회가 열렸다. 인민배우로 추앙받았던 고려인 3세 성악가 류드밀라 남(1947∼2007)의 추모 음악회였다.

대사관 초청으로 참석한 50여 명의 관객은 1시간여 동안 러시아 민속음악, 오페라 등을 감상했다. 본공연에 앞서 러시아대사관학교 합창단, ‘마스꼬비야 무용단’ 등이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베이스 이연성 씨와 소프라노 박인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내리 씨 등 러시아 유학파 음악인들은 오페라 ‘황제의 신부’ 중 ‘마르파의 아리아’, 우울한 세레나데, 오페라 ‘알레코’ 중 ‘모든 무리는 잠들고’ 등을 들려줬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스뱌트킨, 생황 연주자 진윤경, 피아니스트 함유진 씨도 협연했다.

이 음악회는 인천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연성 씨가 대사관 후원으로 7년째 주도하고 있다. 그는 1995∼2002년 러시아 유학 당시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남 씨에게 음악교육을 받았다. 메조소프라노인 남 씨는 1970년대 초 동양인 중 처음으로 볼쇼이오페라단 정단원으로 뽑혀 30년가량 활동하면서 차이콥스키음악원 교수로 지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이 씨를 남달리 아끼며 러시아 정통 성악을 전수했다. 이 씨는 “스승께서 수업을 하기 전 손수 음식을 장만해 식사를 같이했다”고 회상했다. 남 씨는 아버지가 러시아인이지만 충청도 출신의 외할아버지 성을 선택할 만큼 한국을 사랑했다. 이 씨는 남 씨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오페라극장 상임 단원을 지냈다.

이날 추모음악회에서 이 씨는 보유하고 있던 류드밀라 남의 한국 공연 영상물을 상영했다. 남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러시아 성악가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세종문화회관과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다. 대사관 음악회에선 남 씨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불렀던 가곡 ‘그리운 금강산’ 공연 실황을 보여줬다. 이 씨는 “스승이 불렀던 그리운 금강산이 애절한 감동을 불러일으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던 많은 관객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공연 말미에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살고 있는 남 씨의 여동생 라리사 남 씨(64)와 연락한 사연을 전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이번 공연 포스터를 보고 라리사의 딸이 감사의 글을 올렸더군요. 알마티에 있다는 스승 묘지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됐기 때문에 2017년 추모 10주기 음악회를 알마티에서 열려고 합니다.”

이 씨는 1904년 러일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정 바랴크호의 역사현장을 방문하는 러시아 고위인사를 위해 통역을 자주 해주고 있다. 또 러시아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정상 만찬 무대에 두 차례나 나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차이콥스키음악원 한국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러시아 민속음악 교류 확대를 위해 ‘한국 아르티아다’라는 단체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러시아에 본부를 둔 아르티아다는 러시아어로 ‘예술축제’라는 뜻이며, 세계문화예술올림픽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스승이 작고 직전에 불렀던 15개 신곡의 음원을 갖고 있는데, 러시아에 있는 작곡가와 협의해 조만간 CD로 발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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