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지영이(가명·당시 7세) 지민이(가명·당시 5세) 남매는 새엄마 장모 씨(39)를 맞았다. 엄마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아버지가 실직하자 새엄마는 나무 막대기, 빗자루로 남매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새엄마의 매가 무서워 해질 녘까지 집 근처를 배회하다 집에 들어가면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또 수십 대씩 맞았다. 새엄마의 매질은 1년이 넘게 이어졌다. 2004년 1월 새엄마는 지영이가 늦게 들어온 이유를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몸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배를 발로 걷어찼다. 병원에 실려간 지영이는 이틀 뒤 간 파열에 따른 복강 내 출혈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 사망 아동들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려
동아일보는 2001년 이후 주요 아동학대 사망 사건(학대치사 상해치사 폭행치사 등)의 판결문 14건을 분석했다. 전체 14건 중 13건의 피해 아동들은 수개월부터 길게는 3년에 걸쳐 지속적인 학대를 겪다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 부모들은 아이들을 때릴 때 골프채, 빗자루, 알루미늄 자, 단소, 파리채, 심지어는 칼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했다. 집 안에 있는 일상적인 물건들이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인 흉기로 돌변하는 것이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붓 손녀딸(당시 5세)을 학대한 김모 씨(45·여)는 알루미늄 자로 수시로 아이를 때렸다. 피가 날 정도로 때려 자에서 아이의 혈흔이 검출될 정도였다. 정모 씨(36·여)는 잠을 자지 않고 자꾸 보채는 친딸(당시 8세)의 배를 때리고 길이 20cm 식칼로 아이의 오른쪽 허리 뒤를 2cm 길이로 찔렀다. 배가 아프다고 울던 아이는 결국 다음 날 아침 외상성 소장 파열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지영이 경우는 학대 신고가 있어 새엄마가 수사를 받은 적도 있으나 아무런 조치 없이 풀려나 지영이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 사망하기 약 1년 전 지영이 남매가 다니던 교회 전도사는 아이들 등에 매 자국이 선명하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심하게 부어 걷지 못할 정도인 것을 보고 계모를 경찰에 신고했다. 장 씨는 긴급 체포돼 조사까지 받았지만 “더이상 학대하지 않겠다”는 각서만 쓰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오히려 그 이후 학대가 더 심해졌다. 결국 새엄마 장 씨는 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아이들의 학대 사실은 대부분 사망한 뒤에야 뒤늦게 드러났다. 가정학대 범죄는 피해 아동들이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데다 함께 사는 부모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계모가 시켜 여동생을 때렸던 학대 피해자 A 군(당시 14세)은 칠곡 계모 의붓딸 사망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조사에서 ‘내가 동생을 때렸다’고 진술했다가 조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계모의 학대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하기 시작했다. 6세 아들을 상습 구타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강모 씨(50) 사건의 경우 병원 관계자가 병원에 실려 온 아이의 상태를 보고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으나 아이가 사망하고 난 뒤였다. ○ 살인 혐의 적용은 전무…형량 징역 4∼6년
사망한 아이들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지만 수사기관은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14건 모두 치사(致死·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함) 혐의로 기소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정수경 변호사는 “조두순 사건’이 아동 성범죄가 인격살인이라는 점에서 엄벌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범죄에 살인죄를 적용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대 가해자에 대한 선고 형량은 대부분 징역 4∼6년에 그쳤다. 피해자 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고 피고인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 사망한 아이 외에 양육해야 할 다른 아이가 있는 경우엔 항소심에서 1∼2년이 감형된 사례도 있었다.
아동학대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최근 선고된 사건에서는 형량이 징역 10년 선까지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칠곡·울산 계모 학대 사건의 경우 9월 말 시행을 앞둔 아동학대 범죄 양형기준의 상한선(13년 6개월)에 근접하거나 초과한 10년과 15년이 선고됐다.
아동학대에 경각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사건 관련자들이 2차 피해를 보는 일도 있다.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상에 학대로 숨진 아이들의 사진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재판 과정에서 협박을 당해 사임한 가해 부모 측 변호인도 있었다. 한 판사는 “지금 아동학대에 대한 여론의 양형기준은 상한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아동학대 양형에 대한 법적, 사회적 검토가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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