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 흥정으로 시끌벅적한 서울 중구 퇴계로 중앙시장. 과일가판과 정육점이 줄지어 있는 이곳 재래시장 지하에는 ‘아주 특별한 창작공간’이 숨어 있다. 빼곡하게 들어선 상점들 사이로 보이는 노란 간판을 따라 내려가면 총면적 1239m²에 스튜디오·전시실·공동작업실이 갖춰진 ‘예술가들의 놀이터’가 나온다. 바로 ‘신당 창작 아케이드’다.
지하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통로에는 시장 상인들의 얼굴 사진을 아크릴 속에 새겨 넣은 작품들이 전시돼 시선을 끈다. 지하 곳곳에 서 있는 흰 기둥은 캔버스로 꾸몄다. 상인에게 슈퍼맨 옷을 입힌 홀로그램 사진작품이나 기하학적 그림을 붙여놓아 전시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입구에서 20m가량 걷다 보면 ‘탁 탁 탁’ 쇠망치를 두드리며 공예품 만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부터 저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팻말을 단 작업실들이 나온다.
원래 이곳은 1971년 조성된 평범한 지하상가였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이불과 한복, 회센터를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여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손님이 줄면서 이제는 일부 점포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텅 빈 상가들로 흉흉했던 이 지하공간이 최근 예술가들을 ‘새 주인’으로 맞아들이면서 독특한 개성의 창작공간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좁은 벌집 같은 공방 39곳에는 작가 59명이 입주해 있다. 가게 유리창 너머로 앞치마를 두른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예술작품 제작 생중계 현장’ 같다고나 할까. 작가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콜라·사이다 병을 유리잔으로 재탄생시키는 유리 공예가부터 구체관절 인형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공예가, 나뭇가지로 브로치를 만드는 작가의 사무실까지 ‘뻔하지 않은’ 소재로 작업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곳이 더 매력적인 건 예술가들만 ‘따로 노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 작가들은 그간 시장 점포 인테리어나 간판을 예술적으로 꾸미고 시장축제 때는 거리예술 퍼포먼스를 열었다. 매주 1∼2차례 정도 입주한 작가들이 직접 이곳 상인들을 출연시키는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한다. 손수레에 따뜻한 차를 담아 끌고 다니며 상인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지하공방을 둘러본 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작가들의 손길이 간 간판이나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중앙시장 입구로 가면 된다. 지하 공방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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