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라, 더, 숨쉬라… 내 손이 닿을때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정끝별 시인 ‘그들의 생환을 기원하며’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가는 첫 제주도행 수학여행이라 사흘 전부터 옷과 신발을 사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던 여드름쟁이 남학생이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작될 중간고사가 부담스럽기만 하던 소심한 여고생이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어린 딸 아들과 제주도에 감귤농사를 지으러 가던 젊은 부부였다. 대학을 휴학하고 생계를 돕기 위해 배를 탔던 싹싹한 여승무원이었다. 사범대를 수석 졸업한 열혈 초짜 여선생이었다. 시퍼런 생목숨들이었다.

사월의 남해 진도 앞바다, 4월 16일 아침 8시 45분경이었다. “쾅” 소리가 난 지 2시간 20여 분 만에, 전복되었던 세월호는 뱃머리 끝만을 남긴 채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등 476명이 탄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가 침몰했다. 실종자 대부분이 꽃다운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들이다. 어찌 그리도 맥없이 기우뚱, 하고 끝난단 말인가! 그 모질다는 목숨 줄이 어찌 그처럼 천연덕스럽게 우리 손에서 휘청 빠져나가 버렸단 말인가!

실종자 가족들은, 이 땅의 부모들은, 분노했고 오열했고 절규했고 통곡했다. 천 길 심연으로부터 먹먹한 슬픔이 밀려왔다. 가슴을 짓누르는 막막함이다. 그리고 나흘째, 악전고투 속에서 여전히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이런 무참함을, 이 어이없는 분노를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누가 또 이런 희대의 비극을 만들어놓고 저만치 안전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상식을 벗어난 이 비통한 참사의 책임을 자연인 한 명에게만 물을 순 없으리라. 수많은 작은 실수들과, 나태한 무책임과 알음알음이 개입돼 있을 것이다.

그나마 희망의 엄지손가락처럼 떠 있던 푸른 뱃머리마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인정할 수 없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주검과 비보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내민 손을 거둘 수가 없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제 이불 속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열일곱 살 내 딸이 바로 그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사흘 낮 사흘 밤을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넋을 잃고 절규하는 저 어버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퉁퉁 불은 아이들의 손이 우리가 내민 손을 맞잡아주는 그때까지, 자비로운 신이여, 당신의 따뜻한 손길로 우리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 달라. 그때까지 아들딸들아, 젊은 불사신처럼 버텨 달라.   

▼ 시들 수 없는 그들의 무릎에 기적의 손길을… ▼

깜깜하고 춥고 숨찬 선실 모서리에서 너희들의 이름으로 기적을 새겨 달라. 지금의 너희가 바로 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 맞선 단 하나의 희망이다.

동틀 무렵 다시 아이들의 이름을 품고 일어나 불러본다.

나는 여기 있고 너희들은 거기 있다, 그렇게 차갑고 어둡고 무서운 거기에 있다. 먼 남해의 심연 속에, 피어보지도 못한 사월의 어린 꽃봉오리들이 갈앉아 있다. 일렁이는 물이랑 끝에 실려 온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를 듣는다. 파랑 끝 어둠 속에서 모스부호처럼 타전되는 아이들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마디마다 시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손이 있다면,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공기 한 줌이라도 불어넣어줄 수만 있다면….

봄밀가루 향기를 풍기는 그들의 무릎에 기적의 손길이 머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직 살아만 있다면, 불안과 공포와 어둠에서 부디 살아만 있어준다면 뜨겁게 네 이름을 부르며 안아줄 수 있을 텐데. 한 번 더 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한 번 더 입 맞춰줄 수 있을 텐데. 사랑한다 말해줄 수 있을 텐데. 네가 눈을 뜨면 우리 모두는 네 앞에 있을 텐데.

세 번째의 동이 텄다. 그러나 너희들은 아직도 밤이다.

신이 있다면, 신의 가호가 있다면!

시인·이화여대 교수
#정끝별시인#진도여객선침몰#세월호#안산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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