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싸늘하게 돌아온 아들… “일어나 이 녀석아, 집에 가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눈물의 팽목항]

“아들아, 빨리 일어나. 어서 집에 가야 할 거 아니냐”라고 절규하는 아버지.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차가워. 엄마한테 눈 좀 뜨고 말 좀 해보라”며 통곡하는 어머니.

20일 오전 3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임시 시신안치소. 경기 안산 단원고 남학생 2명의 부모가 자식의 시신을 확인한 순간 주위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임시 시신안치소가 설치된 주말 내내 팽목항은 살아 돌아올 거라 믿었던 자식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음을 확인하는 통곡의 자리였다.

19일 설치된 임시 시신안치소는 실종자 가족들이 1차적으로 신원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된 시신은 가족과 연락한 뒤 전남지역 병원으로 이송돼 사망 선고를 받는다. 신원 불명인 시신은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다.

이날 오후 8시경, 10대 여성 시신 3구가 안치됐다. 잠시 후 수십 명의 실종자 가족이 모여들었다. 해양경찰청 과학수사팀 관계자가 모두 여성이라고 하자 일부 학부모는 “쌍꺼풀이 있느냐? 머리 길이는 얼마나 되느냐? 신발은 뭘 신었느냐?”며 자녀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일부 어머니는 남편과 손을 맞잡거나, 두 손을 모은 채 안치소의 하얀 천막 뒤를 응시했다. 그러나 이들 시신의 부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안치소를 다녀온 한 여성은 “물에 빠진 시신을 처음 봤는데 덤덤했다. 지치고 지쳐서 감정마저 메마른 것 같다”며 흐느꼈다.

앞선 오전 3시에는 10대 남성 시신 3구가 항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밤을 새우며 실종된 자녀를 확인하겠다는 5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얼굴 특징이나 복장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직접 봐야 안다”며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장례지도사가 시신을 정리한 뒤 실종자 부모들이 안치소 안으로 들어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잠시 후 한 학부모는 “OO아”라고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통곡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경부터 다시 시신 13구에 대한 신원 확인이 진행됐다. 소지품을 통해 자녀의 죽음을 전해들은 부모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 고○○, 이○○ 가족 분들 나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하얀 천막 안으로 들어간 학부모들은 “우리 자식 살려놓으라”며 오열했다. 천막 밖에 있던 한 단원고 학생 아버지는 통곡의 현장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실종된 자녀를 확인하려는 발길은 계속됐다. 시신 옆에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물건과 수학여행 용돈으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지폐 몇 장이 놓여 있었다. 한 학생 아버지는 하얀 천이 덮인 아들의 머리맡에 주저앉은 채 “아들아, 이제 집에 가자”고 나지막이 말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뻣뻣해진 아들의 손을 붙잡으며 “손 좀 펴봐”라고 애원했다.

애끓는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한 유족은 충격으로 임시 시신안치소 옆에 마련된 현장 응급 의료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너 없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라는 어머니의 외침이 계속해서 의료소 밖까지 터져 나왔다. 한 아버지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길을 따라 밖으로 나오며 “내가 대한민국 떠난다”고 외쳤다.

주말에 팽목항을 거쳐 간 시신은 20여 구. 자녀를 확인하고 통곡 소리가 커질 때마다 주위 사람들도 눈물을 훔쳤다. 아직도 자녀를 찾지 못한 한 실종자 가족은 자리를 뜨며 “아직도 우리 아이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진도=이건혁 gun@donga.com·진도=박희창 기자

#세월호 침몰#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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