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모르겠어요. 슬픈 기분은 잘 못 느끼겠어요. 이러다 아버지 뵈면 눈이 뒤집어지겠죠.”
김모 씨(30)는 16일부터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다. 여행을 가신다며 친구들과 제주도행 세월호에 올랐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다. 16일 침몰 소식을 듣고 달려와 쉼 없이 눈물을 흘리고 때론 화도 냈던 김 씨는 23일엔 대부분의 시간을 체육관 안에 가만히 앉아서 보냈다. 그는 기자에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며 “당장 다음 주에 할 일들이 있었는데 뭔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지 8일째인 23일. 실종자의 절반가량이 시신으로 발견된 가운데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여전히 실종자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는 일부 가족들이 눈에 띄게 탈진하고 있다. 한때 통곡하는 가족들로 가득 차 옴짝달싹하기 힘들었던 체육관에 빈자리가 늘었지만, 하루 종일 허공을 바라보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가족들이 많다. 의료 봉사를 하는 육군 31사단의 한 관계자는 “허공을 바라보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앞을 보는 가족들이 많아졌다”며 “이제는 어지간한 소동에는 반응도 하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하염없는 기다림이 지속되는 탓이다. 실종자 발견이 가장 먼저 알려지는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의 부친은 쉼 없이 상황실과 대기실을 오가며 “시신이 발견된 가족들이 하나둘 가족 대기실을 떠나고 있다. 아이의 생사를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은 것이 여기 있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혹시 잠이라도 들어 가족 발견 소식을 못 들을 걸 우려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충격과 분노의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우울감이 찾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멍한 상태로 기억이 잘 안 나거나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는 ‘비현실감’을 호소하는 가족들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을 상담한 김석주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며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뇌가 본능적으로 차단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상담 봉사에 나선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도 “이 같은 증상이 지속되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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