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1>골든타임 다시는 놓치지 말자
정부 골든타임 행동지침 사실상 전무
재난 발생 직후 골든타임 때 인명을 구조하는 매뉴얼은? ‘없다.’
곤란한 질문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매뉴얼은? ‘있다.’
재난대응 총괄 정부부처인 안전행정부가 만든 ‘재난 유형별 주관기관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 매뉴얼은 빠져 있는 반면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터뷰 대응 매뉴얼만 상세히 담겨 있다.
재난 전문가들은 골든타임과 관련한 실질적인 매뉴얼이 없어 비상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현장 인력이 적절한 초동 조치를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 매뉴얼이 원인이었던 ‘울화통 브리핑’
정부 매뉴얼은 풍수해, 지진, 해양오염, 항공기 사고, 지하철 사고 등 33개 사고 유형별로 나뉘어 있다. 얼핏 보면 사고 유형별로 세분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모든 매뉴얼이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재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다른 부처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주요 부처의 재난 담당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재난사고의 골든타임에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들은 사고 종류에 따라 5분 내지 1시간 안팎의 시간에 현장에 도착해서 상부에 신속하게 보고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누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는 현장의 판단에 맡기고 ‘빠른 보고’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골든타임 대책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인터뷰 요령이다. 안행부 매뉴얼에는 대형 재난 직후 공무원들이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팁(Tip) 7가지를 유형별로 나눠 상세히 설명했다. 예를 들어 확실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빠른 시간 내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거나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는 ‘가정해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하라는 식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대표해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경옥 안행부 2차관이 애매모호한 답으로 일관해 공분을 산 것도 이 매뉴얼을 지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이 차관은 탑승자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재 구조탐색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확언을 요구하면 부처의 위기관리 의지를 보여주는 답변으로 대체하라는 매뉴얼을 지킨 셈이다. ○ 예상 못한 사고에 무방비
대부분의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지역 소방서를 관장하는 소방방재청은 현장 지휘관의 사고처리 경험이 중요하다고 본다. 화재나 건물 붕괴 등 사고의 종류가 달라도 사람을 구하는 방식은 비슷한 만큼 현장 지휘관이 그 방식에 익숙하면 최대한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가지 이상의 재난이 겹치거나 과거 경험한 적 없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지휘관도 판단력을 잃어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화학공장에 폭발사고가 나서 유독물질이 흘러넘치는 화재 및 오염사고 때는 정형화된 매뉴얼에 따라 현장 공조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 체계에선 우왕좌왕하다 피해만 키울 수 있다.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고, 유독물질이 하수구로 흘러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위한 소방서, 환경부, 지방자치단체 간 공조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초동 조치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재난 수습의 모든 권한을 현장에 부여하고 현장 지휘관에게 상부에 보고하는 부담을 덜어줘야 초기 인명구조에 집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상만 공주대 교수(건설환경공학)는 “재난별로 한 쪽 정도의 짧고 간단한 매뉴얼을 만들어 사고 초반에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글 싣는 순서 >
<2> ‘재난 컨트롤타워’가 없다 <3> 피해자 가족 평생 돌보자 <4> 정부 관리 감독 왜 안 되나 <5> 안전은 최선의 투자다 <6> ‘집단 위험 망각증’ 해부 <7> 두 번 실패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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