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소리 나면 친구 또 숨졌나 싶어 철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아픔을 함께]
진도체육관옆 고교생들 불안 증세… 학생-교사들 사고 얘기 안꺼내

주말을 앞둔 25일 오후 5시, 전남 진도고등학교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문을 나서며 누구 하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도고는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1km도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학교. 수업 시간 내내 시신 이송 헬기가 이착륙하는 소리와 응급차가 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생들은 대형 참사 현장의 암울한 분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었다.

1학년 박모 양(16)은 “이번에 헬기를 처음으로 봤어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지금은 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또 누가 숨졌구나’ 싶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요즘은 시끌벅적하던 점심시간이 조용해졌고 밥을 잘 못 먹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3학년 김모 군(18)은 “사고 현장에 있다 보니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슬프다”고 말했다.

진도고 측은 사고 초기에는 점심시간에 TV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하게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갈수록 우울 증세를 보이면서 TV 시청을 중단했다. 신민식 교감은 “요즘 교사나 학생 모두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희생된 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는 게 충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팽목항 인근 주민들도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대책본부가 꾸려진 팽목항 앞 매점에서 일하는 한 20대 여성은 “대형 사고를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지만 피해자 가족들을 두고 심리치료를 받는 게 미안해 속앓이만 하고 있다. 엄마와 언니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진도군과 진도교육지원청은 이렇다 할 재난 심리 치료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진도군 관계자는 “현재로선 군민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김준일 기자
#진도#트라우마#진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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