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간 날 찾아온 이, 집배원밖에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3일 03시 00분


복지 그늘 홀몸노인, 우체국 ‘행복배달…’ 사업으로 본 실태
파리 들어간 밥을 먹는 치매노인, 고독死… 쓰레기더미속 장애아…
6개월간 150여건 복지단체 연결

지난달 17일 강원 영월군 엄모 할머니 자택에서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는 이종호 집배원. 우정사업본부 제공
지난달 17일 강원 영월군 엄모 할머니 자택에서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는 이종호 집배원. 우정사업본부 제공
“할머니! 어디 계세요? 편지 왔어요∼.”

지난달 17일 강원 영월군 북면 공기리. 영월시내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린 뒤 또 흙먼지 날리는 비좁은 산길을 한참 올라 겨우 다다른 한 오래된 농가에 이종호 집배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산속. 그런데 이 집배원이 몇 번 더 할머니를 외치자 100m쯤 떨어진 산속 밭에서 거짓말처럼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이 집 주인 엄모 할머니(85)였다.

엄 할머니는 혼자 산다. 영월지역에 사는 다른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이 집배원에 따르면 그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 중 절반 이상이 노인가구고 그중 또 절반이 홀몸노인 가구다. 이들에게는 집배원이 유일한 방문객이다. 엄 할머니는 “일주일 내내 우리 집에 오는 이는 이이(이 사람)밖에 없다”며 “제일로 그리운 게 사람인데 말벗을 해주니까 그게 제일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날 엄 할머니에게 도착한 우편물은 KT의 전화요금 고지서. 엄 할머니는 “한글이라고는 이름 석 자밖에 모르고 눈마저 어두우니 글씨도 대신 읽어주고 그런다”며 “걸음이 불편하니 돈을 주면 전화비와 전기요금도 이이가 대신 내 준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집 밖에 멀리 나가는 건 1년에 딱 12번, 한 달 치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갈 때뿐이다. 엄 할머니는 “내 걸음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려면 꼬박 2시간이 걸리는데 그나마 버스가 하루에 네 번뿐이라 자칫 놓치면 맥없이 다시 2시간을 걸어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집배원은 이 문제도 해결해줬다. 힘겹게 병원에 다니는 엄 할머니를 보고 영월군에 연락해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연계해 준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이 집배원처럼 배달 지역 내 소외계층을 점검하는 집배원은 전국적으로 8772명에 달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9월 안전행정부와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 협약을 체결한 뒤 145개 우체국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빨간 자전거 활동에 참여하는 집배원들은 최근 반년간 150건이 넘는 소외계층 사례를 발견해 사회복지망에 연계했다. 사례 중에는 △병든 아버지와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던 지적장애아 △치매로 모기와 파리가 그득한 밥을 먹고, 춥다며 방안에 불을 지르던 할머니 △홀로 집에서 쓰러져 있거나 숨져 있던 노인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농촌지역에는 지금의 사회복지제도가 놓치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며 “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부처 간 협력과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영월=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복지#행복배달#빨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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