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일반인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트레이드타워(54층)와 아셈타워(41층)에서 전 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화재 대피 훈련이 실시됐다. 오전 11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란 안내방송이 나오고 전 층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각 층에선 평소 안전 대피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불이야!”를 외치고 랜턴과 붉은 신호봉을 들고 입주한 사무실 직원들을 비상계단으로 안내했다. 1년에 22회 정도 자체 소방훈련을 해 온 코엑스가 사상 처음으로 입주사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대피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입주사 직원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손수건이나 휴지로 입과 코를 막은 채 내려왔고 연막탄으로 피운 노랗고 하얀 연기를 헤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트레이드타워 50층 임원실에 있던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65)을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대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5분. 이들이 1층에서 소화기 작동법을 배워 가상의 불을 끄는 훈련을 마치는 데까지는 총 30여 분이 걸렸다. 48층 국제무역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이혜연 연구원(26)은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오는 데 15분에서 18분가량 걸렸다”며 “정말 화재가 났을 때 대피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빌딩 안에 있던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만 화재 대피 훈련에 참가해 안전 불감증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 빌딩을 합쳐 90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트레이드타워 1530명, 아셈타워 850명 등 2380명(26.4%)만 대피에 나선 것이다.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연차의 젊은 직원들이었고, 상당수는 불이 났다는 안내방송에도 그냥 사무실에 눌러 앉아 업무를 봤다.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도 진지하지 못했다. 안내에 따라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열심히 대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일부는 옆 사람과 키득거리거나 훈련 상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안전요원이 서둘러야 한다고 손짓을 해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터덜터덜 걸어 나오거나, 안전요원이 안내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대피하는 등 혼선도 빚어졌다.
이와 관련해 코엑스 측은 “해외 업무가 많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입주사들에 훈련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며 “평소 일반 대피 훈련에 참여하는 인원은 100여 명으로, 이번에 1000여 명이 참여한 것도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또 “이번 대피 훈련으로 파악된 부족한 부분은 더 보완해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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