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일 때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인데, 1991년에는 (오대양사건) 수사 지휘 사령탑으로 대전지검 차장검사였던 저는 물론 부장검사, 담당검사까지도 새로 교체됐다. (인사문제로) 수사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사진)이 1991년 오대양사건 재수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심 전 고검장은 “김 실장은 당시 영향력을 행사해서 구원파를 탄압한 게 아니고, 무관심이라든가 방관 또는 어떤 면에서는 (수사팀에) 도움이 되지 않게 방해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심 전 고검장은 25일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방영된 시사프로그램 ‘논설주간의 세상보기’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전지검은 1991년 7월 20일 오대양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해 열흘 뒤인 30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했다가 체포했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날인 31일 오후 11시 심 전 고검장은 짐을 싸 대전지검을 떠나야 했다. 다음 날인 8월 1일자로 서울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당시 법무부는 7월 25일 검찰 정기인사를 발표했다.
유 전 회장이 구속된 8월 1일 김 실장은 국무회의에서 집단자살의 배경 외에도 정치세력 개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조속히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자로 대전지검 수사팀도 10명이 보강됐다. 그러나 심 전 고검장과 함께 발령이 난 이재형 당시 대전지검 특수부장도 8월 10일까지만 연장 근무를 한 뒤 떠났다. 송종의 당시 대전지검장은 한 기고문에서 “오대양사건 재수사 실무 총책임자였던 부장검사가 수사를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검찰은 이 사건의 수사 의지가 없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며 아쉬워했다.
심 전 고검장은 “1991년 당시 유 전 회장 측에서 ‘상선(윗선)’에 로비나 정치적 압력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텐데 (유 전 회장을) 갑자기 구속했으니 얼마나 야속했겠나.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 말은 ‘상부에 그렇게까지 (로비를) 했는데 (유 전 회장을) 잡아넣은 것은 배신’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구원파 신도들이 경기 안성시 금수원 정문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1992년 초원복집 사건 때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구를 쓴 현수막을 내건 데 대한 해석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로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로비 대상으로 김 실장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3년 전 검찰 내 인사 요인과 당시 상황을 모르는데 이제 와서 뭐라고 얘기하기 힘들다”며 “만약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유병언 측에 꼬투리가 잡혔다면 지금 전부 폭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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