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종합터미널 화재]
또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명사고… 작업前 가스밸브 점검 제대로 안한듯
건축자재에 불붙어 유독가스 확산, 5일전부터 기름냄새… 구청 조치안해
용접 불티가 가스 배관에 옮겨 붙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는 안전수칙을 지켰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는 “터미널 지하 1층 내부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튄 불티가 누출된 도시가스에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가스에 붙은 불이 근처에 있던 공사 자재 등으로 다시 옮겨 붙으면서 대형 화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공업체가 용접 작업 시 화재 방지 조치를 규정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용접 작업 시 발생하는 불티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이고 풍속이 강하면 15m 이상까지 튈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통풍이나 환기가 잘 안되고 가연물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용접을 하는 경우 불티가 날리지 않게 불티 방지 덮개와 용접 방화포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작업장 내 위험물 현황을 파악하고 인화성 물질에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한 뒤 소화 기구를 비치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기술 지침도 용접은 인화성 물질이 없는 곳에서 하고 그럴 수 없을 경우에는 가연성 물질을 미리 제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득이하게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 작업할 때는 불이 났을 때 바로 끄고 비상경보를 울릴 수 있도록 화재 감시인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교 교수는 “불이 붙을 수 있는 물질을 치우지 않고 용접을 했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인태 화재보험협회 부장은 “불을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는 건물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사전에 화기 작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가스가 왜 누출됐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경기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공사장 근로자들은 ‘작업 전 가스 밸브를 잠근 상태에서 공사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인지, 가스밸브 자체에 이상이 있던 것인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짧은 화재 시간과 규모에 비해 유독가스가 대량 발생한 것은 공사 자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에 식당, 미용실, 상점 등이 입주하도록 수도 전기 등을 설치하고 내부를 구획하는 벽을 세우는 설비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내부에 설치하기 위해 비치해 놓은 인테리어용품 등이 불에 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점포와 점포를 가르는 칸막이벽에 샌드위치 패널 같은 가연성 소재를 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양종합터미널 건물을 시공한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지하 1층의 마감재는 불에 잘 타지 않도록 벽과 천장은 석고보드로, 바닥은 대리석과 비슷한 폴리싱 타일 소재가 쓰였다”고 말했다.
화재와 직접 관련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고 전부터 현장에서 인화성 물질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증언도 나왔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상균 씨(42)는 “사고 5일 전부터 공사 현장 근처에서 시너나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며 “구청 민원실에 민원을 했는데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용접 및 절단 작업 중 일어난 화재는 지난해에만 1017건으로 전체 화재 건수(4만932건)의 2.5%에 이른다. 인명 및 재산 피해도 크다. 지난해 3월 전남 여수시의 한 공장에서는 분말 상태의 플라스틱을 저장하는 탱크의 보강판을 용접하던 중 불꽃이 탱크 내에 남아있던 가루에 옮겨 붙어 폭발해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2008년 12월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에서도 냉장실 문틀을 수리하기 위해 용접을 하던 중 불티가 벽체 샌드위치 패널에 옮겨 붙어 7명이 사망하고 건물이 모두 타 721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