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목포시 상동 목포한국병원 519호 병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 정성도 씨(54·사진)가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팽목항 일대에서 씩씩하게 ‘밥차’ 봉사를 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정 씨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은 팽목항 ‘밥차’ 봉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지난달 28일 오후 6시경. 동료 자원봉사들과 함께 진도 읍내를 돌아보던 중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곧바로 읍내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목포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빠른 조치 덕분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정 씨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튿날인 4월 17일 팽목항을 방문해 40일 넘게 자원봉사를 해 왔다. 민간구호단체인 아드라코리아(ADRA KOREA) 호남지역본부의 도움을 받아 밥차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정 씨는 “많게는 하루 1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잠수부에게는 특식을 별도로 만들었고 끼니를 거르는 실종자 가족을 위해 미숫가루를 타서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나 30일 팽목항이 정상 개방되기에 앞서 아드라코리아는 28일 밥차를 정리했다. 정 씨는 실종자 가족이 남아 있는 현장을 지키고 싶었지만 구호단체의 뜻에 따라 생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팽목항을 지키는 동안 아내 혼자 농사일을 해왔다. 일손이 모자라 호박과 대파 농사는 아예 접어야만 했다. 하루빨리 내가 아내를 도와야 해서….”
정 씨는 딸(30), 아들(28) 그리고 입양한 딸(7)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막내딸은 선천성 시각장애(1급·무안구증)와 지적장애(1급)를 앓고 있지만 “가슴으로 키우는 딸”이라고 했다. “자녀가 잘못되면 부모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같은 부모로서 세월호 유족들이 겪고 있는 슬픔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정 씨는 팽목항에 남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실종자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길 기원했다. 그는 “팽목항에서 느낀 건 바로 나눔의 아름다움이었다”며 “남은 봉사자들이 팽목항의 슬픔을 작은 희망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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