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대 국어교육과 대학원생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4일 14시 07분


수업시간에 보조 발표를 맡은 중국인 장메이링 씨. (사진 본인 제공)
수업시간에 보조 발표를 맡은 중국인 장메이링 씨. (사진 본인 제공)
꿈이 이뤄졌다, 외국인을 한국어로 취재하고 싶다는 오랫동안의 꿈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학과장 고정희)의 외국인 대학원생을 취재하면서다. 이들 대학원생의 한국어 실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취재의 수고를 많이 덜었다.

요즘처럼 외국어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에 통역을 쓰면 되지, 무슨 '꿈'이라고까지 수선을 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취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취재는 기사를 써서 신문에 싣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정확성이 생명이다. 만약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번역해서 잘못된 기사를 게재했을 경우에는 그 파장이 만만찮다. 특히 민감한 문제를 다루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을 취재할 경우에는 더욱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외국어 중에는 자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가 까다로운 단어가 꽤 있다. 그럴 경우에는 상대방이 한국말을 할 줄 알았으면 하고 바라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3년 반 정도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과의 외국인 대학원생을 취재하면서 그런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 학과의 외국인 대학원생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기자도 이 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는데, 어느 날 은사의 상가에서 선배인 이 학과의 윤여탁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제자들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당연한 얘기로 들렸는데 내용은 달랐다. 한국인 제자가 아니라 외국인 제자가 마중을 나온다는 것이다. 외국인 제자라니, 국어교육과에 외국인 유학생이 그리 많았나. 내가 재학 중이던 1970년대 후반에는 국어교육과 대학원에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윤 교수는 다시 말했다. "지금 국어교육과 대학원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정말 그런가. 취재 의욕이 발동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의 말은 사실이다. 현재 이 학과 대학원생이 200명쯤 되는데, 그중 100여 명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민병곤 교수의 ‘한국어 표현론’ 수업은 한국에 와 색다른 경험을 한 외국인 학생들의 발표로 늘 웃음꽃이 핀다. (사진  박경모 전문기자)
민병곤 교수의 ‘한국어 표현론’ 수업은 한국에 와 색다른 경험을 한 외국인 학생들의 발표로 늘 웃음꽃이 핀다. (사진 박경모 전문기자)

외국인 대학원생들의 수업을 직접 보고 싶었다. 5월 16일 오후 민병곤 교수의 '한국어 표현론' 수업을 참관했다. 이 과목은 '한국어교육 전공자'에게는 필수다. 이 학과에서 '국어'와 '한국어'는 의미가 다르다. 대체로 '국어'는 한국인이 한국어를 전공할 때, '한국어'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전공할 때 쓰는 말이다.

민 교수의 수업에는 22명의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그중 외국인은 14명. 국적은 중국 대만 러시아 홍콩 캐나다 등으로 석사과정이 14명, 박사과정이 8명이었다(이곳도 여풍이 거세 남자는 3명밖에 없었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특정 언어-대표적인 것이 영어겠지만-로 수업을 하거나 회의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다국적 학생이 한국어로 수업을 하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민 교수에 따르면 이 수업은 '문화의 차이가 언어 소통에 영향을 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문화적 차이로 겪은 경험을 발표나 토론을 통해 한국어로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한국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이 과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재미라는 것이다. 민 교수는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녀들의 수다'를 언급했다.

쓴 약을 설탕으로 싸서 먹기 쉽게 당의정을 만들 듯, 한국어에 재미를 입혀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이해하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민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자가 일본 게이오대학 '별과(한국 대학의 한국어학당에 해당)'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도 그랬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자기나라와 일본 문화 차이를 비교해 가며 성공과 실패담을 얘기할 때가 가장 즐거웠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수업은 한 학생이 자신이 읽은 책의 개요를 대표로 발표하고, 책 내용에 부합하는 경험이 있는 사람을 보조발표자로 지정해 이야기를 시킨 뒤, 다른 학생들이 자유롭게 발표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날 대표 발표는 한국인 학생이, 보조 발표는 중국인 학생이 맡았다. 이런 방법은 많은 학생이 돌아가며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날 텍스트로 쓰인 에드워드 홀의 '생명의 춤'을 거칠게 소개하자면 시간은 문화를 이루는 핵심요소이며, 시간의 흐름이 '리듬'인데 리듬은 문화마다 달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겪은 '리듬의 충돌'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들어보자는 식으로 수업은 전개됐다.

학생들의 경험담이 이날 수업의 하이라이트였다. 원어민 중국어 교사로 부임하던 첫 날, 학생들이 '워 아이 니(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환영했을 때 당황했다는 경험담이 나왔다. 중국에서 이 말은 연인들 사이에서나 쓰는 말이기 때문. 한국어를 가르치던 중 미국인 학생이 "피곤하다"며 가방을 싸서 나가면서 "다음 주에 보자"고 했을 때의 황당한 경험도 나왔다. 한 중국인 여학생은 한국인 종업원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해서 "네,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폭소가 터졌음은 물론이다.

이 밖에 러시아와 몽골 학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책을 보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걸 보고 놀랐다거나, 중동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의 '공유개념'이 부족해 개인의 일을 가져와 얘기를 하는 바람에 고민을 했다거나, 친해졌다고 생각한 서양의 룸메이트가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남남처럼 선을 긋는 행동을 해 머쓱해졌다거나, 멕시코인들은 외국인에게 벽을 허무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경험을 했다는 등의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이 수업의 평가는 출석이 10, 과제가 60, 태도가 30점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의 시험보다는 평상시 수업시간에 열심히 토론과 발표에 참석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전능력을 길러야 할 외국인 학생에게는 합리적인 평가방법으로 보였다.

이 수업을 참관하며 흥미를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즉석에서 생생한 경험을 얘기를 한다는 설득력과 현장감,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국어로 얘기한다는 독특함이 결합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올 3월 현재 이 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외국인은 24명. 최초의 박사학위자는 2002년에 나왔는데 중국인이었다. 역시 중국이 17명으로 가장 많고 몽골이 2명,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인도 태국 터키가 각 1명이다. 몽골인 박사학위자 중 한 명이 2010년 8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외국어대의 학과장(몽골어과·2009년 개설)이 된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교수다.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거나 재적 중인 외국인도 43명(재적 14명)이나 된다. 박사학위자는 대부분 모국으로 돌아가 한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석사과정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외국인도 적지 않다. 석사 졸업생은 104명, 석사 과정 수료자 및 재적생은 60명(재적 25명)이다. 석사 졸업생 중 33명은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나머지 70여 명은 모국으로 돌아가 취업했다. 석사 학위만으로도 교수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는 대부분이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서울대의 은사가 자국을 방문하면 마중을 나가는 제자가 많을 수밖에.

이 학과의 외국인 대학원생은 정원외로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보통 3 대 1쯤 된다. 만만치 않은 경쟁률이다.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안배 차원에서 처음으로 오는 국가의 학생을 배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능하면 많은 국가에 한국어를 전파하려는 뜻일 것이다. 어렵게 입학한 만큼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매우 좋다는 게 민 교수의 설명이다.

외국인 학생이 많아진 이유는 역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한국어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에도 한국어를 전공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대학과 이 학과의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서울대로 오는 학생은 모국에서 교수나 교사를 꿈꾸는 경우가 많고, 다른 대학은 일반 직종의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많다는 분석이다.

모스크바 국립대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유학 온 리타 씨.  (사진 본인 제공)
모스크바 국립대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유학 온 리타 씨. (사진 본인 제공)

수업 중간의 휴식 시간에 두 학생을 따로 만나봤다. 러시아에서 온 리타 씨(26)는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공했다. 고려대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지난해 8월 이 대학원에 들어왔다. 왜 한국에 올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좀 낭만적이어서"라고 했다.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지만 꼭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100% 진심은 아니란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와 한국은 더욱 긴밀해질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될 때 러시아와 한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졸업 후 한국서 일을 하고 싶다는 판팅샨 씨. (사진 본인제공)
졸업 후 한국서 일을 하고 싶다는 판팅샨 씨. (사진 본인제공)

판 팅 샨 씨(25)는 중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한국으로 온 경우다. 한국에 조기유학을 왔다고나 할까.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중국으로 돌아가면 교사로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그는 신방과를 졸업한 때문인지 한국의 언론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한국과 중국의 기사 스타일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외모는 한국의 젊은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일부러 국적을 밝히지 않으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듯했다.

한국어 실력 말고 두 사람에게서 느낀 또 다른 공통점은 젊음이 주는 힘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50대 후반인 내게 그 말은 '진짜로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려움은 있었어도 그걸 극복할 충분한 젊음이

있었다'는 말로 들렸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충만했다. 그리고 한국과 맺은 인연을 어느 때인가는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국어도 국제사회에서는 젊은 언어다. 그래서 이 학과의 대학원을 두드리는 외국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 학과를 졸업한 뒤 모국으로 돌아가든, 아니면 한국에 남아 있든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어라는 젊은 언어를 무기로, 세계 곳곳에서 젊은 도전이 끊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 도전이 성공해 한국어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기를 기원해 본다. 고백하건대, 기자가 이번 취재가 즐거웠던 진짜 이유는 한국어로 취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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