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산 구상나무 절반 말라죽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윗세오름 등 10곳 표본조사
모두 73만 그루 고사한 듯…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 탓

한라산 관음사 등산코스 가운데 정상부근인 동북 사면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고사했다. 기후변화 등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상나무 숲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 관음사 등산코스 가운데 정상부근인 동북 사면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고사했다. 기후변화 등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상나무 숲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 한라산의 대표적 특산수종인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숲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펴진 늘 푸른 모습,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을 간직해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상나무가 이상기온 현상 등으로 고사목이 대량 발생한 것이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구상나무가 분포하는 한라산 10개 지역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상나무 2그루 가운데 1그루가 말라죽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한라산 전체 구상나무 분포 면적 795ha 가운데 45.9%에서 고사목이 확인됐다. 고사목 개체 수는 ha당 930그루로 전체적으로는 73만 그루가량으로 추정된다. 구상나무의 고사목 비율은 윗세오름(해발 1700m) 일대가 67.2%, 성판악 등산로(해발 1800m) 일대가 65.0% 등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한라산 정상 부근은 29.8%로 가장 낮았다.

15년 이내에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58.6%를 차지해 최근 들어 구상나무 고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라산연구소 측은 한라산 구상나무가 1990년대까지 노령화, 종간 경쟁 등으로 자연적인 고사가 주요 요인이었으나 2000년대부터는 기후변화에 의한 적설량 감소, 차가운 바람에 의한 건조 등이 고사에 영향을 미쳤다. 구상나무는 눈에 덮인 채 온도를 유지하며 겨울을 나지만 최근 기상이변에 따른 적설량 감소로 차가운 바람이 직접 나무에 몰아치면서 생육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태풍, 집중강우 등도 뿌리를 흔들어 성장기반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됐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국제보호지역연구과장은 “기후변화와 기상이변, 병해충 피해 등 고사 원인이 다양해질 것”이라며 “구상나무의 향후 변화는 물론이고 어린 나무의 발생 현황 등을 조사해 자연적인 복원 가능성을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멸종할 것이라는 위기가 나타남에 따라 지난해 9월부터 제주도, 환경부, 산림청 등 국공립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구상나무의 보존 및 복원 전략수립을 위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곳에 퍼져 있다.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지난해 구상나무를 ‘위험에 처한 적색목록’ 6등급 가운데 위기근접 등급에서 2단계 높은 멸종위기 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구상나무#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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