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호수돈여고 ‘홀스톤 갤러리’… 4년전 기도실서 갤러리로 탈바꿈
20여차례 전시-큐레이터실습 병행 “전시된 물고기들처럼 자유 만끽”
물고기를 주제로 한 유경자 작가의 작품전이 열리는 대전 호수돈여고 홀스톤 갤러리 전경. 학생들이 휴식시간에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며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 공간이 됐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하얀 물고기 수백 마리가 바닷속을 마음껏 유영한다. 도자기로 만든 물고기 모형 수백 개가 낚싯줄에 매달려 있다. 갤러리 사방의 하얀 벽면은 조명에 반사된 물고기 그림자들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유경자 작가의 도예 설치미술 전시인 ‘Flying in the Space’가 열리는 대전 호수돈여고 내의 ‘홀스톤 갤러리’ 풍경이다.
홀스톤 갤러리는 학생이 작가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의 교내 갤러리. 미술 담당 김주태 교사가 입시 준비에 찌든 학생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2010년 7월 옛 기도실을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개관 기념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아무 작품도 전시하지 않고 갤러리를 그저 ‘비물질적 공간’으로 비워두는 파격을 시도했다. 갤러리로 변신한 기도실 공간은 그 자체로 작품이고, 작가는 미술교사와 학생들이 되는 셈이었다.
지난 4년 동안 20여 번의 전시가 열렸다. 김 교사는 “학교 갤러리의 전시가 일반 전시에 뒤지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역량 있는 작가들이 선뜻 홀스톤 갤러리를 선택했다. 서양화와 한국화, 사진 등 분야별로 유명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것이 대전미술이다’ 같은 전시는 일반 갤러리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학생들은 전시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에 적극 참여한다. 교내 미술반 학생들이 중심이 돼 좋은 작품과 작가를 찾아낸 뒤 전시를 유치한다. 이른바 ‘큐레이터 실습’이다. 전시 섭외는 물론이고 작품 설치도 돕는다. 작가를 인터뷰해 도록에 싣는 작업도 한다. 작가는 다른 곳의 전시 때와는 달리 마치 스토리북 같은 두툼한 방명록을 선물로 받는다.
꿈 많은 여고생들은 교내에 이런 갤러리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점심 혹은 저녁 식사를 한 뒤 틈틈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학생들은 수시로 갤러리를 찾아와 바닥에 철퍽 주저앉거나 심지어 벌렁 드러누워 깊은 바닷속의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이곳이 ‘학생들의 해방공간’이 된 셈이다. 학교 측은 이런 역할을 감안해 갤러리를 오후 7시 반까지 개방하고 있다.
유 작가의 이번 전시에 대해 학생들은 “유영하는 물고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그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유 작가의 공방을 미리 찾아가 물고기 모양의 도자기를 같이 빚기도 했다. 유 작가는 “이번 전시는 물고기 군상을 통해 분주한 삶을 되돌아보고 자유의 의미도 찾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학생들이 좋아해 나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7일까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