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설득에도 “나가면 사형 아니냐” 자해

[GOP 총기난사 병장 검거] 軍과 대치 42시간 40분

‘자살 기도’ 임병장 병원 이송 강원 고성군 22사단 예하 일반전방소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 탈영한 임모 병장이 탈영 3일째인 23일 오후 군 당국과 대치하다 자살을 기도해 군 의료진에 의해 강릉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임 병장은 K-2 소총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고성=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군 당국은 22사단 예하 일반전방소초(GOP)에서 총기 난사 후 23일 생포한 임모 병장(22)의 범행 동기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임 병장이 자살 기도 직전 부대원들에 대한 불만과 초소 내 갈등 사례를 상세히 적은 유서 형식의 메모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는 병영 내 불화가 범행동기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 대치에서 자살 기도까지

특공대원까지 투입된 군 추격조는 23일 오전 8시 20분경 임 병장을 발견하고 10m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했다. 임 병장은 오전 8시 40분경 아버지와 통화한 뒤 배고픔을 호소했고 군 추격조는 빵과 전투식량, 우유를 전달했다. 오전 11시 25분경에는 임 병장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이 현장에 도착해 특공부대와 헌병대 지휘관들과 함께 거듭 투항을 권유했다. 가족들은 7, 8m까지 접근해 “부모 심정이 무너진다. 그만두고 자수해라”고 설득했지만 임 병장은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 나갈 수 없다”며 버텼다.

임 병장이 울면서 아버지와의 통화를 요구하자 현장 지휘관은 비무장으로 다가가 휴대전화를 임 병장에게 건넸다. 군 관계자는 “극도의 불안과 긴장, 피로감 탓인지 임 병장의 반응은 매우 신경질적이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 25분경 군 추격조와 30m 떨어진 거리에서 대치하던 임 병장은 종이와 필기구를 갖다 달라고 요구해 건네받았다. 그러곤 20여 분 뒤 갑자기 K-2 소총을 자신의 가슴 부위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임 병장은 메모에 지난해 12월 GOP 투입을 전후해 동료들과 겪은 여러 차례의 불화와 갈등 사례를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유서 형식의 메모에는 특정 부대원을 거론하며 자신을 홀대한 데 대한 강한 불만도 담겨 있었다”며 “결국 그동안 쌓였던 부대원들과의 불화가 직접적 범행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던 임 병장은 즉각 병원으로 이송됐다. 임 병장은 왼쪽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상황이 끝난 뒤 임 병장의 부모는 ‘인내심을 갖고 아들을 살리려고 노력한 군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군은 설명했다.

임 병장의 생포로 상황이 종료됐지만 군 당국의 수색 및 검거작전이 허술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 병장이 GOP 범행 장소에서 7∼10km나 떨어진 곳까지 도주한 것은 군의 수색작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8시 40분경 군 추격조 사이에 오인사격이 벌어져 부상자가 발생한 것도 지적받을 소지가 크다. 우측 관자놀이에 총탄이 스치는 부상을 당한 병사는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 치료 후 수사기관에 압송해 집중 조사

군은 임 병장이 회복되는 대로 조사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23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만큼 회복 직후 중앙수사단 헌병대로 압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 병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범행 동기 및 사건 경위 등을 조사받은 뒤 군 검찰에 송치돼 추가 조사를 거쳐 육군교도소에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임 병장이 군사재판을 받을 경우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다. 총기 난사로 숨진 5명의 사망자 중에는 상관인 김모 하사가 포함돼 있다. 이는 군형법 제53조 ‘상관살해’에 해당한다. 또 추격조 소대장에게도 총상을 입힌 만큼 ‘상관에 대한 상해죄 및 상관 살해미수 혐의’도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장병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해 살해했기 때문에 군형법 제59조 ‘초병 살해 및 초병 살해 미수 혐의’도 받을 수 있다.

이런 혐의에 대해 군형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사형 선고 가능성이 높지만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안 되고 있는 만큼 실제로는 종신형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 병장의 총격으로 사망한 장병 5명의 합동분향소가 23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됐다. 군 당국은 당초 희생 장병들을 순직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유가족들이 전사자에 준하는 대우를 요청해 검토하고 있다.

윤상호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손영일 기자/강릉=백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