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딱딱한 법정에 예술의 향기 솔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창원지법 ‘예술법정’ 단장 마무리
로비-법정 등에 그림-사진-서예… 재판 당사자-법관까지 정서순화

강민구 창원지방법원장(오른쪽)이 119호 소년법정에 걸린 박시호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의 사진작품을 방문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창원지법 제공
강민구 창원지방법원장(오른쪽)이 119호 소년법정에 걸린 박시호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의 사진작품을 방문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창원지법 제공
“재판 당사자와 변호사, 그리고 법관들까지도 여유를 갖는 것 같습니다. 평소 딱딱하기로 소문난 한 변호사는 대기시간에 가벼운 농담을 건넬 정돕니다.”

창원지법 최문수 공보판사는 24일 법조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예술로 소통하는 법정(ART & COURT)’을 이렇게 설명했다. 창원지법은 본관 로비와 20개 법정 모두에 그림, 사진, 서예 작품을 걸어 예술법정으로 꾸미는 작업을 최근 끝냈다. 현관에는 한국화가인 김경현 선생의 ‘바라보다’라는 소나무 그림을 비롯해 박시호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의 ‘양귀비 가족’ ‘순백의 향기’ 등이 전시돼 있다. 소년법정 대기실은 주노식 선생의 서예작품 ‘아름다운 동행’, 이상주 선생의 ‘흔들리며 피는 꽃’ 등이 맞아준다. 대기실의 쇠창살도 모두 뜯어내 분위기를 밝게 바꿨다.

본관 대법정엔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한 한국화가 한경혜 선생의 ‘보금자리’(어머니의 품안처럼) 등이 많은 사람에게 평안함을 준다. 제212호 민사법정 협의이혼 대기실의 ‘동행’이라는 사진도 눈길을 끈다. 이승은 선생의 작품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 민사4부 최아름 판사는 어머니(서양화가 박덕기·2012년 별세)의 유작인 ‘봄 밤’과 ‘연인들의 장소’ 등을 기꺼이 내놨다. 봄 밤은 212호 민사법정에서 만날 수 있다. 전체 작품은 작가 30명과 법원 직원 5명의 정성이 담긴 110점.

딱딱하던 법정을 거대한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별난 법관’으로 잘 알려진 강민구 창원지법원장(55·사법시험 24회). 2년 전 북유럽 견학 당시 스웨덴 웁살라 지방법원 법정,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의 로비 등에 예술작품이 전시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국 등 연수를 갔던 나라의 법정도 참고했다. 냉철한 법률 판단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의 상처와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는 ‘치유적 사법 절차’에 무게를 둔 것이다. 강 법원장의 구상은 예술인들의 재능기부와 이봉자 총무과장, 김성훈 서기관 등 법원 직원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으로 4개월 만에 완성됐다.

법무법인 마산의 하귀남 대표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대기시간에도 정서적인 안정감과 여유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순 변호사는 “극한 대립이 사라진 법정에서는 분쟁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다”고 평가했다. 강 법원장은 예술법정 완성을 기념해 26일 재능기부자들을 법원으로 초청한다. 법정을 둘러본 뒤 감사장을 전달하고 저녁도 함께할 예정이다. 창원지법은 재판 휴정기인 여름휴가철(7월 28일부터 2주간)에 법정 갤러리를 일반에 공개한다. 그 이전에도 재판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견학이 가능하다. 작품해설집은 소책자를 만들어 방문자에게 배포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동영상을 올려 두었다.

창원지법의 한 법관은 “예술법정은 강 법원장이 한국 근대사법 100년 만에 도입한 참신한 시도”라며 “다른 법원으로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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