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8일 일본 도쿄 스루가다이 호텔에서 출정식을 가진 재일학도의용군 선발 1진 청년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공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어요. 1·4후퇴 때 평양의 육군병원에서 팔다리가 잘린 부상병들이 남하하려고 침대에서 기어 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봉남 재일학도의용군 일본지부장(95·일본 도쿄 거주·사진)은 24일 64년 전 발발한 6·25전쟁을 이렇게 떠올렸다. 재일학도의용군은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 일본에 살고 있던 청년과 학생 642명이 만든 의용대. 6·25전쟁에서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했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들이다.
이 지부장은 6·25전쟁 64주년을 맞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과 함께 마련한 재일학도의용군 초청행사에 최고령자로 참가했다.
이 지부장은 13세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와세다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 전쟁 소식을 들었다. 그의 나이 31세. 당장 참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 지부장은 주둔 중이던 미 극동사령부(GHQ)를 찾아 참모장이었던 매슈 리지웨이 준장을 만났다. 친구들과 혈서를 써넣은 태극기를 든 채였다. ‘재일학도의용군’ 1진으로 편성된 이 지부장과 다른 77명의 용사들은 1950년 9월 8일 미 함정을 타고 인천항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7일 뒤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다. 주한미군 지원 병력인 카투사(KATUSA) 1기인 셈이다.
문학도를 꿈꾸며 니혼대에서 공부하던 이성근 씨(88·미국 오리건 거주)도 재일학도의용군 1진 중 한 명이다. 이 씨는 “원산·이원 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을 치르면서 재일학도의용군 중 135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고, 살아 있는 사람은 3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동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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