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군 일반전방소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임모 병장(22)이 자살 시도 직전 유서 형식의 메모에서 “어린아이들은 죄의식 없이 장난 삼아 벌레를 밟아 죽이지만 그 벌레는 어떻겠느냐”는 심경을 밝힌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임 병장은 메모에서 자신을 ‘벌레’에, 동료들을 ‘어린아이’에 각각 비유해 GOP 내 불화와 갈등이 범행 동기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A4용지의 3분의 1가량 쓴 메모의 대부분은 자신의 처지를 벌레와 ‘돌에 맞는 개구리’에 비유한 추상적 내용”이라며 “특정인을 거론해 괴롭힘이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강릉아산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던 임 병장은 전날 육군 중앙수사단의 1차 수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 동기에 대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군 당국은 임 병장을 국군강릉병원으로 옮겨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겸 국방부 장관이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집단 따돌림이 군에 존재한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집단 따돌림을 전제로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군의 부실한 후속 조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아울러 군이 사건의 핵심 단서인 임 병장의 메모 공개를 유족 반대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어 과도한 비밀주의가 억측과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육군과 군 수사기관의 수뇌부가 메모 공개 시 부대 관리소홀 등에 대한 문책을 우려해 공개를 극구 반대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숨기고 떠넘기는 듯한 군의 태도는 국민의 불신과 실망을 자초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총기난사로 사망한 다섯 병사의 유가족들이 26일 국군수도병원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기사건의 총체적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 있는 조치가 있을 때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초에는 27일 영결식을 치를 계획이었다. 고 김영훈 중사의 아버지 권선언 씨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군 당국은 사인을 심장을 관통한 총상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부검 결과 과다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사건 당시 군 당국의 초동대처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밝혀 달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오후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해 유족들에게 ‘군내 집단 따돌림’ 발언의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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