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홀 D 무대에서 열창하는 가수 김추자. 노래는 아쉬웠고 몸은 유연했다. 이에스피엔터테인먼트 제공
“‘호랭이’는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예술을 남긴답니다. 앞으로는 예술을 제대로 한 번….”
33년 만에 돌아온 가수 김추자(63)의 무대는 한바탕 굿판 같았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홀 D에서 열린 ‘김추자 콘서트-늦기 전에’는 ‘원조 댄스 가수’에 방점이 찍혔다.
풍성한 파마머리에 히피처럼 질끈 머리끈을 동여매고 나풀대는 색색의 의상을 입고 등장한 그는 최근 낸 신곡 ‘몰라주고 말았어’를 시작으로 2시간 동안 17곡을 소화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거짓말이야’를 부를 땐 벨리댄스를 추듯 엉덩이를 유연하게 흔들었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서는 ‘헙! 헙! 헙!’ 하는 기합에 거수경례를 붙이며 무대를 종횡했다. ‘무인도’에서는 노래의 굴곡을 신체로 표현하듯 몸부림을 치며 목소리를 뽑아냈다. ‘빗속의 여인’ ‘꽃잎’까지 신중현의 곡들이 공연의 큰 줄기를 이뤘다.
김추자는 공포영화 속 혼령처럼 긴 머리를 양옆으로 내두르며 헤드뱅잉을 하거나 상반신을 뒤로 완전히 젖히고 양팔을 움직이는 안무를 펼쳤다. 요즘 아이돌그룹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반백의 중장년층이 중심인 3000여 명의 관객은 ‘무녀(巫女)’ 같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탄성을 냈다. 김추자는 “그동안 음악도 좋지만 ‘에미’ 노릇, 가정살림에 집중했다”면서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이제 늦기 전에 예술을 펼쳐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 음정이 불안하고 수시로 무대 위 계단에 주저앉아 노래하는 모습에서는 장기간 공백과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정원영(건반) 한상원(기타) 송홍섭(베이스기타) 같은 베테랑 연주자를 위시한 22인조 대규모 악단이 그 공백을 메우려 노력했지만 코엑스홀의 산만한 음향이 돕지 않았다.
이날 공연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님은 먼 곳에’였다. 뒤쪽 객석의 관객 일부는 무대 앞쪽으로 몰려나와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하는 첫 소절부터 제창하며 감개무량해했다. 초대가수로 나온 바비킴은 “음악이 음악인에게 주는 숱한 고난도 무대 위에 서면 없어진다. 김추자 선배의 무대는 선배로, 인간으로서 제게 힘이 됐다”고 했다. 전인권은 ‘그것만이 내 세상’ ‘걱정말아요 그대’를 열창하며 “선배님은 우리 민족에게 자유란 걸 알려준 분이다. 옛날처럼 앞으로도 계속해 대한민국을 흥분시켜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관객 임경숙 씨(65)는 “우리 젊은 시절 대단한 무대를 보여줬던 가수가 고령이 돼 눈앞에서 저 정도의 열정으로 노래하는 걸 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했다. 김추자는 다음 달 6일 춘천 호반체육관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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