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대신 ‘시간’을 사고파는 곳이 있다. 포장지 모서리가 닳아버린 레코드(LP)판, 1970년대 평범한 가정집 서랍장에나 있었을 법한 빛바랜 종이 예금통장, 2002년 월드컵 기념 우표…. 새로 나온 상품을 찾는 쇼핑객으로 북적이는 서울 중구 명동 인근에 오히려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이 대접받는 ‘회현 지하상가’가 있다.
평범한 옷, 신발 가게 사이로 ‘옛날 우표·승차권 삽니다’ ‘행운의 2달러 전문’ ‘근현대사 수집품’이라는 독특한 간판을 단 가게들이 숨어 있다. 가게마다 진열대에 온갖 수집품들을 자랑하듯 전시해 거의 ‘작은 박물관’ 수준이다. 회현 지하상가에는 43곳의 수집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우표 화폐 주화 수집 상점이 22곳이다. 취미를 물으면 너도나도 ‘우표 수집’을 꼽았을 만큼 우표가 인기가 높던 1950년대, 인근 백화점 1층에는 우표상점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집 상점에는 우표부터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엽서, 옛 담배 포장지, 1920년대 기차표, 1973년 새마을사업 지붕 개량 융자신청서까지 희귀한 옛 자료들이 추억을 구입하려는 손님을 기다린다.
우표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LP판 판매상점들도 눈에 띈다. 상점 내 책장에 한가득 꽂아놓은 LP판을 뒤적거리니 1974년 영국 가수 에릭 클랩턴의 2집 ‘461 오션 불러바드(Ocean Boulevard)’, 가수 신승훈의 1990년대 빅 히트 앨범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이 고개를 내민다. 정사각형 LP판 앞뒷면을 요리조리 살피다 보면 시간과 장소 장르를 뛰어넘는 음악들이 ‘지지직’ 정겨운 소음과 함께 귓가에 들려올 것만 같다. 중고 DVD, 지포라이터, 오디오 수집 상점들도 있어 관련 분야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지하통로로 내려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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