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여대생 박모 씨(24)는 매달 20일만 되면 학교 가기가 무섭다. 20일은 대부업체에서 빌린 1000만 원의 이자를 갚는 날이다. 지난해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뒤 이날만 되면 이자를 내라고 재촉하는 전화가 새벽부터 밤까지 1시간 간격으로 걸려온다. 최근 몇 개월간 제 날짜에 이자를 내지 못하자 대부업체 직원은 학교 앞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 씨는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렵다”면서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대부업체들이 대출 잔액 ‘10조 원 시대’를 열며 급성장했지만 불법, 탈법적 영업행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법적 상한선을 넘는 ‘약탈적 고금리’와 불법 채권추심 행위는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의 소비심리까지 위축시켜 경기 회복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안전행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말 현재 대부업체의 대출 잔액은 10조16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5.2% 증가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정부의 규제 강화 속에서도 대형 대부업체들이 공격적인 영업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업체들의 파이는 커졌지만 불법적 영업행태는 사라지지 않아 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대부업체 2966개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벌인 결과 890곳이 폐업 유도 등의 행정지도를 받았고 746곳이 등록 취소, 과태료 부과,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받았다. 법적 상한선을 넘는 고금리를 받아 챙기거나 계약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업체가 이렇게 많다는 뜻이다.
또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올해 초 대부업체 이용자 32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4%는 대부업체의 계속된 전화, 폭언, 폭행 등 불법 채권추심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등록하지 않은 불법 대부업체 및 불법 채권추심과 관련해 경찰에 검거된 인원만 4215명에 이른다.
2002년 연 66%였던 대부업체 법정 최고 금리는 올해 4월 연 34.9%로 낮아졌지만 이 상한선을 지키지 않는 업체가 적지 않아 돈을 빌린 서민들이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금융협회 설문조사 결과 대부업체 이용자의 34%가 법정 상한선을 초과하는 금리로 돈을 빌려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업 시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서민들의 부채 규모가 늘어날 뿐 아니라 신용불량자를 양산해 가계경제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며 “대부업체의 역할을 대신할 서민금융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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