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버스 입석금지’ 첫날, 10여대 지나도록 못탄 시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6일 18시 08분


광역버스 입석금지 시행 첫날인 16일. 직장인 허윤서 씨(26·여)는 오전 6시 40분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중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종로 방면으로 가는 버스 10여대가 '쌩'하고 지나가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대부분의 버스는 '만차'라고 적힌 팻말을 붙인 채 무정차 통과했고 간혹 정류장에 멈추더라도 남은 좌석이 한두 자리뿐이라 경쟁이 치열해 탈 수 없었다. 허 씨는 20여분 동안 발을 동동 구르다가 분통을 터뜨리며 지하철 분당선 서현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역버스 입석금지 시행 첫날 오전 수도권 일대 버스정류장에선 '출근 전쟁'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이날 수도권 62개 노선에 버스 222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일부 노선은 서울로 갔다가 승객을 태우지 않고 바로 돌아오는 공차회송까지 단행했지만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마련된 정책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실상을 모르는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날 분당 이매촌 한신아파트 앞 정류장에는 출근길에 나선 시민 50여 명이 오전 6시 30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섰지만 대부분 버스를 타지 못했다. 이 곳은 분당에서 서울로 나가는 길목이라 평소 출근 시간대에 빈 좌석이 거의 없고 인근에 아파트가 몰려있어 분당에서 입석승객이 가장 많다. 처음엔 버스회사 직원과 시청 관계자들이 정류장에서 버스 좌석을 확인하고 입석 탑승을 통제했지만 출근길이 막힌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융통성 있게 입석 승차를 허용하라"며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일부 시민들은 원래 타던 정류장 대신 차고지와 가까운 정류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버스를 타기도 했다.

눈 뜨고 버스를 여러 대 놓친 데다 버스 증차로 서울 시내 교통까지 혼잡해져 출근 시간은 평균 30~40분 정도 늦어졌다. 한남대교에서 서울 명동사거리로 진입하는 남산1호터널 상행선 2차선은 광역버스와 증차용 전세버스가 길게 늘어서 병목 현상이 극심해져 평소보다 통행에 10~20여분이 더 걸렸다. 일부 승객들은 지각을 피하려고 예정된 정류장보다 앞선 곳에서 내려 부랴부랴 뛰어가기도 했다.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경기 일산과 부평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역 버스정류장에서 잇따라 버스를 놓친 직장인 박모 씨(24·여)는 "입석 금지가 오늘부터 시행되는 줄 몰랐다가 낭패를 봤다"며 "급하게 투입된 전세버스들은 남은 좌석 수를 알려주는 표시도 없어 눈으로 좌석을 확인해야 해 너무 불편하다"고 성토했다. 정모 씨(45·여)는 "경기 부평 일대는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이 '지옥철'이라 버스를 타왔는데 입석 금지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 운전사들은 출근하는 시민들의 사정은 잘 알지만 입석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다가 1년에 3차례 적발되면 기사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만석 시엔 무정차 통과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운전사들은 시행 첫날에는 빗발치는 항의에 못이겨 부득이하게 입석 탑승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입석 탑승 단속이 시작되는 8월 중순 이후로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부평에서 서울행 버스를 운행하는 조모 씨(63)는 "만석 상태에서 승객이 타면 '좌석이 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정을 알기에 못 타게 말리진 못 했다"면서 "안전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불편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일부 노선에 버스를 늘리기만 해서는 광역버스 입석 금지로 인한 혼란과 불편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혁렬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광역버스를 증차시키면 그만큼 이용자가 더 늘어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될 수 있다"며 "인천, 경기에서 온 광역버스를 서울시 경계에서 회차 시키고, 각 권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을 연계시키는 환승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통안전을 위해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시킨 만큼 버스 회사에 대한 운영 지원 및 요금 인상도 안전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설재훈 교통연구원 국가교통안전재난연구단장은 "안전을 위해서는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버스 회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하고 승객들은 안전하고 편하게 광역버스를 이용하게 된 만큼 그에 상당하는 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남=조동주기자 djc@donga.com
박선영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최건 인턴기자 서울대 인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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