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잊혀져 있었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첫날인 16일 곳곳에서 “탁상행정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아침 출근길 지각했다는 불평에서부터 ‘왜 빈 차를 못 타게 하느냐’는 타박이 수도권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그토록 목청 높였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속 100km 이상을 넘나드는 고속도로에서 작은 접촉사고만 나도 서서 가는 승객은 사망 또는 중상을 입을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는 광역버스가 적지 않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승객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안전 강화’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많다. ○ 피하지 못한 수도권 출근대란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첫날 오전 수도권 일대 버스정류장에선 ‘출근대란’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이날 수도권 62개 노선에 버스 222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일부 노선은 서울로 갔다가 승객을 태우지 않고 바로 돌아오는 공차 회송까지 단행했지만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마련된 정책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실상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웠다.
이날 분당 이매촌 한신아파트 앞 정류장에는 출근길에 나선 시민 50여 명이 오전 6시 30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섰지만 대부분 버스를 타지 못했다. 이곳은 분당에서 서울로 나가는 길목이라 평소 출근시간대에 빈 좌석이 거의 없고 인근에 아파트가 몰려 있어 분당에서 입석 승객이 가장 많다. 처음엔 버스 회사 직원과 시청 관계자들이 정류장에서 버스 좌석을 확인하고 입석 탑승을 통제했지만 출근길이 막힌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융통성 있게 입석 승차를 허용하라”며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눈 뜨고 버스를 여러 대 놓친 데다 버스 증차로 서울시내 교통까지 혼잡해지면서 출근시간은 평균 30∼40분 더 걸렸다. 한남대교에서 서울 명동사거리로 진입하는 남산 1호 터널 상행선 2차로는 광역버스와 증차용 전세버스가 길게 늘어서는 병목현상이 극심해져 평소보다 통행에 10∼20분이 더 소요됐다.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인천 부평과 경기 고양시 일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부평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정모 씨(45·여)는 “이 지역은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이 ‘지옥철’이라 버스를 타 왔는데 입석 금지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증차 없는 퇴근시간엔 혼란 더 심해
저녁에는 ‘퇴근 전쟁’이 벌어졌다. 퇴근시간대에는 출근 때와 달리 버스 증차가 없어 혼란이 더 심했다. 회사가 밀집한 서울 강남역 앞 정류장에는 수도권 일대로 퇴근하려는 인파가 몰려 버스 대기선마다 40∼60명씩 길게 늘어섰지만 입석 승차를 통제해 한 번에 5∼10명밖에 타지 못했다. 중구 백병원 앞 버스정류장에는 입석 승차를 막는 버스 회사 직원이나 공무원이 없어 버스 운전사의 선택에 따라 입석 승객을 빼곡히 채우거나 무정차 통과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버스 운전사들은 출근하는 시민들의 사정은 잘 알지만 입석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다가 1년에 세 차례 적발되면 기사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만석 땐 무정차 통과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 환승체계 갖추고 요금 현실화해야
교통 전문가들은 일부 노선에 버스를 늘리기만 해서는 광역버스 입석 금지에 따른 혼란과 불편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혁렬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천 경기에서 온 광역버스를 서울시 경계에서 회차시키고, 각 권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을 연계시키는 환승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통 안전을 위해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한 만큼 버스 회사에 대한 운영 지원 및 요금 인상을 안전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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