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의 교수가 달라붙어 ‘중국도사’ 만드는 중문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15시 01분


전북대 중문과 대학원 ‘화이부동’ 연구실은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BK21 사업 연구에 바쁜 대학원생들로 넘쳐난다. 이중에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여럿 있다.
전북대 중문과 대학원 ‘화이부동’ 연구실은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BK21 사업 연구에 바쁜 대학원생들로 넘쳐난다. 이중에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여럿 있다.

대학도 변하지 않으면 존립이 힘든 시대다. 여러 대학들이 입학정원이 응시인원보다 많아지는 2018년을 코앞에 두고 '시장'에 자신들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공감을 얻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변화의 큰 틀은 융복합이다. 서로의 장점을 합쳐 시스템화하고 다른 것의 장점을 과감히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융복합의 요체다.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변화는 그런 점에서 시대흐름과 닿아 있다.

진명호 중문과 교수의 "2013년부터 중문과 전공필수과목을 없앴다"는 말 속에 변화의지가 들어있었다. 전국의 중문과 중에서 처음으로 전공필수를 없앤 것은 아니지만, 지방 거점 국립대 중에서 전공필수를 없앤 것은 전북대 중문과가 처음이다. 왜 그랬을까? "학생들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관심이 있지 중국문학, 철학 등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수업을 들으라고 하면 재미없어합니다. 효과도 없고요."

그럼 학생들은 전공필수 대신 무엇을 들을까? "사회대에서 중국정치를 공부한 교수님께 중국정치를 듣고 상대에서 중국 경제와 무역실무를 공부합니다." 즉 중문과 학생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중국관련 학문과 지식을 '중어중문학과'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중국과 관련 있는 '모든 과'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1000명이 넘는 전북대의 모든 교수가 중문과 교수인 셈이다.

권위적인 교수사회에서 자기 과목이 폐강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생들의 희망을 수용한 결과는 교수들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한다. 문학, 철학, 비평 등 전공필수로 묶어놨던 과목들을 없애버리니 오히려 수강생이 늘어나고 강의 분위기도 더 진지해졌다고 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열기를 연구로 보답했다. 중문과는 전북대 인문대 최고인 1인당 1.7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학술진흥재단에서 인정하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전공필수 부담이 없으므로 학생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진 교수는 "전공 필수가 없어졌다고 해서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어 공인 시험인 HSK 5급 이상, 한자공인성적 2급 이상, 영어 토익 700점 이상의 성적이 있어야 졸업이 가능하기에 공부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중국관련 신입사원을 뽑을 때 보통 HSK 5급 자격증을 요구한다. 중국이나 중국관련 기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격요건이어서 학교 측은 엄격하게 학사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졸업 전에 전부 HSK 5급 이상의 실력을 갖추는데 이는 전북대의 풍부한 시스템을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진명호 교수는 "너의 꿈을 이루고 싶으면 전북대학교로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한다.
진명호 교수는 "너의 꿈을 이루고 싶으면 전북대학교로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한다.

중문과 학생들은 대학본부가 2008년부터 시작한 GLP(GLOBAL LEADERSHIP PROGRAM 글로벌리더십 프로그램) 덕분으로 자매결연한 중국과 대만의 54개 대학에서 길면 2년까지 공부할 수 있다. 학생들은 원어로 강의를 받으며 18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원하는 학생 모두가 중국이나 대만으로 나가 공부할 수 있다. 학생들은 생활비만 부담한다. 중국 하얼빈의 동북공업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가면 월 600위안의 생활비도 받을 수 있다.

2012년부터 1년간 광둥성 소관(韶關)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강민수 씨(중문과4년·26)는 "중국에 가기 전에는 중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1년간 말하기 듣기 쓰기 위주로 공부한 결과 신HSK 최고등급 자격증을 땄다. 중국어에 자신감을 바탕으로 금융권에 진출해 중국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중국문학만 해서는 경쟁력이 없지만 전공필수를 없애고 다양한 관심학문을 듣게 만든 학과의 결단과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한 전북대의 우수한 시스템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중국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꼭 전북대 중문과로 오라"고 말한다. 강씨처럼 중국 현지에 갔다온 중문과 학생들은 연평균 40명. 입학정원이 47명임을 감안하면 거의 전부가 중국을 다녀온 셈이다.

대학 어문학과의 애로점은 가르치는 교과목의 대부분이 언어와 언어관련 과목이라는 점이다. 시대흐름은 언어라는 틀을 넘어 해당 국가 전체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방향전환이 쉽지 않다. 어문학과의 교수들 중 일부는 그 나라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나라를 가르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언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에 당연한 말이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학과의 존립도 위태로워진다. 문을 닫는 어문학과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수는 대학 변화의 중심이다. 기자는 열정적인 교수들이 진취적으로 변할 때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많이 목격했다. 학생들의 요구에 전공필수를 없앤 전북대 중문학과 교수들도 처음에는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서 그들은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듯이 마음을 비웠다. 현애철수장부아(縣厓撤手丈夫兒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 버리는 게 대장부)란 말이 떠오른다. 진명호 교수는 말한다. "눈치 보지 않고 뚜벅뚜벅 우리의 길을 갈 것입니다."

동아일보 대학세상(www.daese.cc)
전주=컨텐츠기획본부 이종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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