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일은 조용히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 사고가 한순간에 널리 퍼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또 좋은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작한 사람과 혜택을 보는 사람 모두가 그 일의 일부가 되지만, 나쁜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에게 잊혀져 간다.
취약계층 영유아를 대상으로 '발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석대 아동발달지원센터'는 전자의 경우가 아닐까. 센터는 전공이 다른 교수 5명이 힘을 합쳐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 바탕에 교수들의 전문성과 의지가 깔려 있다.
센터가 하는 일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영유아들을 사회의 관심 속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성발달의 골든타임은 만 3~5세. 이 시기에 보통 가정의 아이들보다 환경자극을 덜 받게 되는 영유아들은 나중에 더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교수들은 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초기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기투합했다.
교수들은 전라북도가 전국에서 인구수 대비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장애인부모 비율이 가장 높고 그 부정적 영향이 영유아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이 연구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이유다.
김환중 아동발달지원센터장 겸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전라북도가 더 좋은 사회적 환경이 되고, 제자들이 더 많이 취업을 하고, 우석대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망'만으로는 일은 시작되지 않는다. 문제의식과 그를 풀 방법,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 교수로서 사회에 무엇인가 돌려줘야 한다는 사회공헌의식도 한몫했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 문제에 도전하고 있을까. 표준화된 도구가 포함된 독창적인 시스템을 서비스 하는 '중재'가 키워드다. 중재(intervention)란 특수교육학에서 쓰는 용어로 목표 달성을 위해 대상자들을 돕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중재 대상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 초기인지, 정서와 사회성, 운동 등 4개 영역에 대한 발달검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 1개 이상에서 유의미한 지체를 보이는 영유아에게는 규격화된 프로그램인 SIT(Self-Imagery Training Program 심상훈련프로그램)를 주 2회씩 6개월간(48회) 제공한다.
SIT란 아동들의 인지자극용 각종 카드와 그림책들로 정교하게 구성한 도구. 구효진 유아특수교육학과 교수가 주축이 돼 만들어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SIT는 197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한 빈곤계층 지원프로그램인 SURE START와 미국의 HEAD START 프로그램의 단점을 보완했다. 가장 큰 특징은 전문교육을 받은 연구원이 표준화된 도구를 이용해 아동에게 맞는 중재방법을 그때그때 적용한다는데 있다. 연구원들의 전문성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센터는 27명의 연구원에게 한 달에 두 번씩 SIT 적용방법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중재의 효과는 고무적이다. 2012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영유아 4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언어이해력은 30%, 인지관련 점수는 60% 정도 올라갔다. 공격행동과 과잉행동은 중재 12회가 지나면서 급격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6개월간 전북 장수군 K 유치원에 다니던 6살 난 딸을 중재에 맡겼던 동남아 출신 주부 김모 씨는 "아이의 말투와 행동이 전보다 좋아져 자신감을 갖고 친구들과 놀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교수는 "SIT 프로그램은 일반 가정의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극성스러운 부모들의 '편식교육' 탓에 영리하게 보이는 아이들도 발달검사를 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도 SIT를 이용해 중재해보면 효과가 있다는 것. 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작업치료학과 김환중 교수, 심리학과 신행우 박영주 교수, 간호학과 이윤정 교수, 유아특수교육학과 구효진 교수들 모두는 SIT프로그램을 경험한 아이들의 전두엽은 경험하기 전에 비해 유의미한 활성화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 추정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SIT의 활용범위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센터의 서비스를 경험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한다. 계량화할 수 없는 소득이다. 그런 소득은 또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과 학생들도 '왜 공부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사회 문화 교육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영유아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며 니트(NEET)족이라 불리는 사회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나중이 아니라 바로 영유아기에 집중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선천적 장애는 없지만 날로 늘어나는 사회부적응자들을 치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 우석대 아동발달지원센터의 서비스는 국가가 써야할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최근 우석대 유아특수교육학과, 심리학과, 아동복지학과로 구성된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사회환경취약 영유아 발달지원사업단'이 교육부 선정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으로 선정됐다. 센터가 좀더 체계적으로 아동발달지원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김 교수는 "관련 학과 학생들이 '영유아 발달지도사', '영유아 심상발달지도사', '영유아 발달평가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 서비스 전문가와 서비스 수혜자가 모두 늘어나 매우 고무적"이라고 사업단의 특성화 선정을 반겼다.
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바람은 중재가 필요한 모든 아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걸림돌은 뜻밖에도 정부의 서비스 대상 확산 정책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한정된 비용으로 많은 아동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 그러다보니 중재를 경험한 부모들은 최소 1년 이상 서비스를 원하지만 재정 형편상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기가 어렵다. 센터는 200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4300명의 아동들에게 중재서비스를 했지만, 서비스가 필요한 아이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특징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는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뜻을 이어받아 줄 것으로 믿는다. 우석대 아동발달지원센터를 만든 사람들의 선의와 열정이 민들레 홀씨처럼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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