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역대 최단 개봉 12일만에 1000만 관객 돌파
백성을 향하는 忠과 義, 이념 떠나 모든 계층에 호소력
불황-사고 무력감 한국에 희망
영화 ‘명량’이 개봉 12일째인 10일 오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최단 기간 1000만 돌파 영화였던 ‘괴물’(21일)보다 9일이나 빠르다. 인기의 중심에는 이순신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스토리닷에 따르면 개봉 일부터 8일까지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언급된 영화 ‘명량’ 관련 키워드 중 이순신 언급량(버즈량)은 약 4만 건에 달한다. 주인공인 배우 최민식(약 9700건)의 4배 이상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명량’은 오래전부터 형성돼 있던 이순신 팬덤의 욕구를 제대로 풀어준 영화”라고 평가했다.
○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안티’ 없는 이순신
‘충’과 ‘의’를 강조하는 이순신은 민족주의, 넓게는 보수의 정서와 닿아 있는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했고 1968년 서울 세종로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1980년대 이후 진보 진영에서 한동안 외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화 ‘명량’은 ‘충’과 ‘의’를 달리 해석하며 약점을 극복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같은 이순신의 대사는 진보 진영에서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요소다.
여야 정치인 모두 ‘명량’ 열풍에 동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명량’을 봤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13일 관람할 예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전 원내대표도 최근 트위터에 ‘명량’ 관람 후기를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변호인’(2013년·1137만 명)이나 혁명이 부각된 ‘레미제라블’(2012년·591만 명)처럼 진보 진영이 흥행을 주도한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 지금 한국은 ‘이기는 리더십’을 원한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이순신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유현목 감독의 ‘성웅 이순신’(1962년) 등 3편의 이순신 영화가 나왔던 1960, 70년대엔 국난 극복의 상징이자 완전무결한 영웅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에선 엄격하고 강한 군인으로 그려졌다.
반면 ‘명량’의 이순신은 강인한 리더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리더십 갈구에 대한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명량대첩은 12척의 배로 133척을 무찌른,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뤄낸 해전으로 꼽힌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이 결정적인 흥행 요인이라는 것.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계속된 불황과 잇따른 대형 사고로 패배감, 무력감에 젖은 한국 사회에 오랜만에 대중이 선망할 만한 승리의 사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손가인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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