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76일 만이다. 고교 4년 선후배 사이로 6·4지방선거에서 원수처럼 다퉜던 서병수 부산시장(62)과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66)이 19일 공식적으로 만나 포옹했다. 박빙으로 싸우던 이들은 선거 전 언론사 대담 후 “소주 한잔하며 다 털자”고 했지만 앙금이 깊었다.
“새누리당의 20년 부산 독점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던 오 전 장관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서 시장을 앞서며 첫 무소속 부산시장 탄생이란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50.7% 대 49.3%, 2만701표가 모자랐다.
서 시장은 선거 막판에 오 전 장관이 세월호 기간에 골프를 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통합진보당 후보의 사퇴를 두고 종복세력과 손잡았다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논문표절 문제도 제기했다.
이기면 다 해결된다는 잘못된 선거문화를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오 장관 측은 단단히 별렀다. 서 시장 측이 제기한 의혹 7건과 관련해 서 시장을 포함해 모두 10여 명을 공직선거법 허위사실 공표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 유치와 동북아해양물류 중심도시 건설,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지역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여권 실세 정치인 출신 시장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지역여론이 비등했다. 후배인 서 시장은 4일 오후 저녁 아무도 모르게 오 장관 자택을 방문했다. 부산 발전을 위해 통 큰 양보를 해 줄 것을 진정성 있게 부탁했다. 광복절인 15일에는 롯데호텔에서 오 전 장관을 만나 만찬과 함께 무책임했던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인간적인 만남에 오 전 장관이 결국 마음을 열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평화란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끝없는 도전’이란 말에 감명도 받았다. 오 전 장관은 19일 화합의 자리에서 “시시비비는 또 하나의 반목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부산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고 작은 거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서 시장은 “깨끗한 선거, 정책선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사과드린다”고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오 전 장관은 서 시장과 헤어지면서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선물했다. 책갈피에 ‘부산시정을 위한 통 큰 시정을 부탁드립니다’는 글도 새겼다. 오 전 장관의 부탁처럼 통 큰 시정이 무엇인지, 부산의 미래가 어떠할지에 대해 서 시장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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