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호 옆 경기 광주시 남종면 이석리의 아담한 산에는 1970년대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 이후락 부장(작고)이 지은 금란재(金蘭齋)란 별장이 자리 잡고 있다. 쇠보다 견고하고 난초보다 향기롭다는 뜻의 이 별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자주 찾아 심신의 피로를 풀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이 이젠 국민들의 몸과 마음에 기를 불어 넣어주는 ‘팔당산삼수목원’으로 변신했다.
이런 ‘변화’는 최혜원 팔당산삼수목원 원장(57)이 주도했다. 최 원장은 학창 시절부터 숲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독일 등 유럽과 일본에서는 잘 알려진 치료법이다. 산속 숲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나무와 꽃 등을 보며 심신을 달래면서 병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서울 성심여고 시절 천주교 세례(세례명 소피아)를 받은 그는 사회복지사업에도 관심이 있어 심리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면서 1990년대 초부터 산을 찾아 다녔고 1997년 말 급매물로 나온 54만5455m²(약 16만5000평)의 이 산을 샀다. 서울 강남에서 20∼30분이면 닿을 수 있고 숲이 우거진 데다 호수까지 옆에 있으니 입지조건이 아주 좋았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사회복지 사업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오혜경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9)에게 자문했다. ‘사회의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가장 열악한 분야가 장애인 복지’라는 말에 2000년 지적장애아들을 도와주는 모니카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년 200여 명의 장애인 가족을 도우며 이 산을 장애인들이 재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녹지 보호를 위해 1970년대 만들어진 ‘그린벨트법’에 막혀 아무런 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오래 머물려면 최소한의 숙소와 화장실 등 시설이 필요한데 그마저 만들 수 없었다. 당일 코스로 산을 찾아 숲 체험을 하고 돌아가는 프로그램만 가능했다.
2002년쯤이었다. 평소 거래처 선물로 자연산 송이버섯을 애용하고 있던 그는 추석이 다가오자 늘 그래 왔듯 버섯으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을 찾았다. 그런데 버섯이 흉년이라 살 수 없었다. 그때 그곳 심마니들이 산삼을 권유했다. ‘산양(山養) 산삼’과의 첫 만남이었다. ‘산양’은 말 그대로 산에서 자연 그대로 키운다는 뜻이다. 선물용으로 사면서 가족들도 먹었다. 몸이 금세 달라졌다. 최 원장은 산삼을 먹은 뒤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고 한다. 산삼의 효능이 많지만 그중 면역기능 강화 기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산삼을 많이 구매하다 보니 어느 날 심마니들이 산삼에 투자해 달라고 했다.
제대로 된 산양 산삼은 산지관리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는 ‘국내 산지에서 재배하는 삼’이다. 차광막 등 인공적인 시설 없이 재배하는 삼이며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키우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산삼’과 같은 효능이 나온다고 한다. 산삼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산에 씨를 뿌려두고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다 보니 발아율이 떨어진다. 7년근을 생산할 경우 씨앗 100개에 2개 정도로 단 2%만 살아남으니 제대로 된 산삼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심마니들이 투자를 해 달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처음엔 산삼을 쉽게 많이 확보하기 위해 봉화 등 일부 지역 심마니들에게 투자를 했다. 조건은 산삼을 싸게 많이 사는 것 외에는 없었다.
큰 산을 사두고 장애인재활시설도 지을 수 없어 고민하던 최 원장은 2011년 산삼 씨앗을 산에 뿌리기 시작했다. 팔당호 주변이라 습도가 높고 산이 동북향인 데다 산림도 우거져 있어 산삼을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산삼은 하루에 해를 3∼4시간만 봐야 한다. 해가 뜰 때 잠깐 보고 대부분 나무 그늘 속에 있어야 산삼이 잘 자란다.
“산에 어떤 시설도 지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가족들 별장이나 산책 코스로만 쓰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산삼 사러 다니며 얻은 지식을 활용해 산에 산삼이라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산양 산삼에 대한 효능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쯤 심마니 이양우 씨(46)를 만났다. 이 씨는 사업을 하다 여의치 않게 되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삼에 심취한 인물이다. 봉화와 경기 용인시에서 산양 산삼을 키우는 심마니로 변신해 산삼 씨 개갑술(일종의 발아 기술)을 익혔다. 개갑술은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씨를 발아시킨다. 씨앗의 80∼90%를 발아시킬 수 있으며 7년까지 생존율도 8%까지 높일 수 있다. 심마니들의 세계에선 획기적인 기술이다. 그래서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산양 산삼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영세한 심마니들이 어려움을 겪고 가짜 산양 산삼이 나도는 국내 산삼 재배 및 판매 시스템에 경고장도 날리고 싶었다. 그래서 ㈜팔당산삼수목원을 만들고 이 씨가 대표를 맡았다. 최 원장은 산삼을 키우는 장소를 이 대표에게 제공하면서 과거 사업하던 때의 인맥 등을 동원해 산삼을 국민들에게 보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먼저 지인들에게 권유했다. 그랬더니 먹어보고 다시 찾는다. 솔직히 서울 강남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효과가 없으면 절대 다시 안 온다. 그런데 먹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암 환자들에게도 권유했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친 환자들에게 먹어보라고 권유했는데 회복이 빨라지는 등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었다.”
최 원장이 산양 산삼을 판매하면서 들은 효능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잠을 잘 잔다는 것이다. ‘산에서 약초 뿌리를 먹고 몇 날 며칠 자다 일어나 보니 먹은 게 산삼이었다’고 전해오는 말이 있듯 산양 산삼은 숙면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삼은 3500년 전 중국 갑골문자에 처음 등장한다. 인류가 산삼의 존재와 효과를 안 것은 최소 5000년 이상인 것으로 추론된다. 산삼은 맛이 달고 먹은 후 느낌은 약간 차갑다. 오장을 보호하고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상태를 멈추고 나쁜 기운을 없애며 눈을 밝히고 심장을 열어서 지혜를 북돋운다고 한다. 장기간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산다고 한다. ‘신농본초경’ 등 중국의 고서에 산삼은 병을 치료하는 약초 중에 가장 많은 효과를 보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최근 알려진 산삼의 효능은 이렇다. 암세포를 파괴하고 면역력을 길러 준단다. 산삼 뿌리에는 사포닌의 일종인 RG1(학습기능 개선, 항피로 작용), Rb1(중추신경 억제, 해열 작용, 간기능 보호), Rb2(항당뇨, 동맥경화 예방) 등이 존재하고 심장 이상과 출혈성 쇼크,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래된 것일수록 성분 함량이 더 높다.
“요즘 산양 산삼이라고 표현은 하지 않고 마치 산삼인 것처럼 속여서 파는 사례가 많다. 산양 산삼은 7년근부터 인정받는데 7년근이라고 해봤자 새끼손가락 하나 크기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큰 인삼을 가지고 산양 산삼이라고 속여서 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산양 산삼은 몸에 좋은 사포닌의 함량이 인삼의 10배가 넘는다.”
산양 산삼 씨는 7년근 이상에서 채취가 가능하며 1kg에 60만∼70만 원이다. 인삼 씨는 1년 이상 근에서부터 씨를 따며 1kg에 4만∼8만 원 선이다. 산양 산삼이 ‘산삼 효과’를 보기 위해선 최소 7년을 키워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은 1, 2년만 키워도 뿌리가 크다. 2012년 1월 1일 산양삼산법이 발효됐다. 그런데 유예기간이 5년인 탓에 인삼을 산으로 옮겨 재배한 ‘진무기(재무기)’라 불리는 것을 산양 산삼으로 파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가짜 산삼을 팔다 인천지검에 72명이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다. 자연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이 산양 산삼 재배다. 숲이 우거진 산에 씨를 뿌리기만 한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만큼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산양 산삼을 키울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는 임업인들이 법을 지키도록 유도하면서 가짜 산삼의 유통통로를 막아주면 된다. 요즘 정부가 지원해 전국 곳곳에서 산삼 축제를 벌이는 사례가 많은데 그곳에서도 가짜 산삼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니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이 더 필요한 셈이다.
“요즘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홍삼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한다. 산양 산삼도 마찬가지다. 건강에 유독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은 가격대를 가리지 않고 진짜 산삼이라면 산다. 우리가 제대로 효능 있는 산삼을 키우면 외화벌이도 가능하다.”
최근 중국은 한반도의 절반 정도의 땅에 1년에 9t이나 되는 씨를 비행기로 살포하고 있단다. 이 대표는 “그 씨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간다. 효능은 우리나라 산삼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산삼 씨 가격이 2∼3배로 뛰었는데 중국에서 싹쓸이해 가서 그렇다.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지금의 홍삼처럼 산양 산삼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공기업 KT&G가 인삼과 홍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듯 산양 산삼을 키운다면 조만간 우리 국민들도 쉽게 산삼의 효능을 즐길 수 있고 외화벌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금란재 산 일대 9만9173m²(약 3만 평)에 산삼 씨 5000만 개를 뿌렸다. 현재 약 3000만 개가 살아 남았다. 올해엔 1억5000만 개를 더 뿌릴 예정이다. 산양 산삼 7년근 1뿌리의 가격은 공식적으로 6만1000원. 최 원장은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요즘 1뿌리에 3만 원만 받고 팔고 있다.
산삼을 키우는 산의 명칭에 수목원을 넣은 이유도 있다. 산책길을 단계적으로 개방해 국민들이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걸리는 산책 코스를 올해 초에 개방했다. 산삼을 키우고 있어 전면 개방은 힘들지만 산삼이 크는 산을 돌아보며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희망자가 있으면 최대 하루 500명까지는 개방할 예정이다. 현재는 주말에 50∼100명이 찾고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산삼은 몸의 병을 고치는 데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 그리고 온갖 나무가 우거진 산 속에서 피톤치드 등 좋은 공기를 마시면 심신이 건강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길이 있으면 당연히 가야 하는 법이다.”
산양 산삼을 제대로 키워 가급적 많은 국민이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최 원장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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