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에 저 장례식장 앞을 가득 채운 화환들은 뭡니까? 그 돈으로 폐쇄회로(CC)TV 하나만 달아 놨더라도 이런 극한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4일 낮 12시 반경 화장장인 세종시 연기면 은하수공원. 2일 포로체험 훈련 도중 숨진 제13공수특전여단 고 이유성 중사(23·1계급 특진 추서)의 아버지(48)는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극한 훈련을 하는 곳에 CCTV라도 달았으면 관리자들이 수시로 상황을 체크해 위험한 순간에 병사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군 당국에 왜 부검을 의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숨진) 아이의 몸을 살펴봤는데 깨끗했다. 이름 석 자 남기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명예롭게 보내주기로 했다”고 답했다. 반면 이 중사와 함께 훈련 도중 목숨을 잃은 조용준 중사(21)의 유족은 시신 일부에 멍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며 부검을 의뢰했다. 군 당국도 “의혹 해소 차원에서 사고사는 부검을 원칙으로 삼는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고 이 중사는 3남매 중 장남으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특전사에 입대했다. 휴가 때마다 “국가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싶다”며 장기복무 의사를 밝혔다. 적은 월급이지만 꼬박꼬박 저축해 자신의 힘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말도 해왔다. 그러나 그의 꿈은 2일 예기치 않은 사고로 물거품이 됐다.
이 중사의 어머니 윤모 씨(48)는 아들이 저세상으로 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2주 전 아들이 휴가를 나와선 내가 만든 음식을 전에 없이 맛있게 먹더라고. 먼저 떠날 것을 알려주려고 그런 거였는지….”
장래에 특전사 입대를 희망하던 한 고교생도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지난해 여름 ‘2014 증평 하계 특전캠프’를 다녀온 의정부고교 2학년 김모 군(17)은 당시 이 중사와 캠프에서 친분을 쌓아 5일 부대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았고 뉴스를 통해 이 중사 사망 소식을 접했다. 김 군은 4일 오전 대전국군병원 빈소를 방문해 조문대 위에 한 장의 편지를 놓고 갔다. “2일 카카오톡을 했는데 답장이 없었어요. 뉴스에 나오는 정보가 하나씩 일치하면서 ‘정말 사실이 아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김 군은 이 중사를 강하면서 따뜻한 형님으로 기억했다. “캠프에 입소했을 때 ‘허리띠가 없다’고 하자 중사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신 쓸 수 있는 텐트 줄을 허리에 둘러 줬죠. 특전사에 관한 질문에 꼬박꼬박 답해 주는 등 많은 배려를 해준 분이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이 중사는 이날 특전사 전우들이 ‘검은 베레모’를 합창으로 부르는 가운데 하늘로 떠났다. 그러나 유족들의 한없는 절규는 큰 울림으로 남았다. “나라에 충성하겠다며 젊음을 바친 아이들인데, 이렇게 안전 관리를 제대로 못 한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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