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합격 대가 2500만원… 승진 900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아직도 이런 상사
한전 前본부장 人事때마다 돈 챙겨… 전보 200만원 등 ‘공정가격’까지
룸살롱 접대받고 오다 감찰단에 덜미

“한국전력 본부장이시죠?”

올해 2월 18일 새벽 집으로 가던 한전의 현모 본부장(55) 앞길을 남성 몇 명이 가로막았다. 당황한 현 씨가 “왜 그러냐”고 말하자, 남성들은 그날 현 씨의 행적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현 씨는 전날 밤 한전 감사 및 인사 부문 고위직 2명과 함께 지역본부장으로 승진한 후배로부터 310만 원어치 ‘술 접대’를 받았다. 낯선 남성들은 그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받고 귀가하던 상황까지 그대로 설명했다. 공직자 비위를 감찰하는 국무조정실 공직복무점검단 직원들이 현 씨를 적발하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인사 비리가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4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현 씨는 인사철마다 한전 부하 직원들의 인사 청탁을 해결해 주고 돈과 접대를 받았다. 2011년 1월 처장으로 근무할 때는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한 직원의 조카를 합격시켜 주고 2500만 원을 누나 명의 계좌로 받았다. 한전 공채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채용 청탁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해 한전 신입공채 경쟁률은 198 대 1에 달했다.

인사철마다 부하 직원들에게서 상습적으로 돈을 받은 정황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 씨는 2012년 12월 부하 직원인 박모 씨(56)를 지역 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대가로 900만 원을 받았다. 전보 인사를 원하는 직원들은 통상 100만∼200만 원을 현 씨 차명 계좌로 보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현 씨 누나 명의 계좌에 입금된 돈은 총 2억7000만 원. 경찰은 직원 6명의 진술을 통해 이 중 9차례 2300만 원이 인사 청탁 뒷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한전 내부에서 승진 900만 원, 전보 100만∼200만 원 등 인사 청탁과 관련된 ‘공정 가격’까지 존재했다”며 “차명 계좌 입금액 중 현금은 출처 확인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또 다른 청탁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현 씨에게 한전 내부 인사 청탁이 집중된 것은 그가 2009년 이후 인사실과 비서실 등 소위 ‘힘 있는’ 요직에서만 근무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장이나 부사장 등 임명직 임기가 통상 1, 2년으로 짧은 공기업의 특성상 인사 관련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현 씨가 전체 한전 인사를 주무를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현 씨에게 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된 사람 중 인사 청탁에 실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신입사원 채용이나 승진, 전보 청탁을 들어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현 씨를 구속하고 돈을 건넨 한전 직원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한전 감사실에는 수사 결과를 통보했다. 앞서 한전은 6월 현 씨를 해임조치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한국전력#뇌물수수#인사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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