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좌석 아빠는 찰과상… 뒷좌석 딸은 전신장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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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

안전띠 하나에… 안전벨트를 착용한 조수석의 여성 모형과 어린이보호장구(카시트)를 사용해 앉힌 3세 어린이 모형은 차량의 정면충돌에도 불구하고 차량 내부와 충돌하지 않았다.(위쪽 사진) 시속 48km로 고정벽에 정면충돌하는 실험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조수석 여성과 뒷좌석 아동 모형이 충돌과 동시에 차량 내부에 강하게 부딪치고 있다.(아래쪽 사진) 교통안전공단 제공
안전띠 하나에… 안전벨트를 착용한 조수석의 여성 모형과 어린이보호장구(카시트)를 사용해 앉힌 3세 어린이 모형은 차량의 정면충돌에도 불구하고 차량 내부와 충돌하지 않았다.(위쪽 사진) 시속 48km로 고정벽에 정면충돌하는 실험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조수석 여성과 뒷좌석 아동 모형이 충돌과 동시에 차량 내부에 강하게 부딪치고 있다.(아래쪽 사진) 교통안전공단 제공
지난달 가족과 휴가를 떠난 A 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하던 1.5t 트럭에 뒷부분을 받혔다. 차량이 뒤집혔지만 운전하던 A 씨와 조수석에 앉았던 부인은 안전벨트를 맨 덕분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차량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뒷좌석의 초등학생 딸에겐 재앙이 닥쳤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탓에 차량 내부에 강하게 부딪치며 목이 골절돼 의식을 잃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안전벨트 착용 여부가 극과 극의 결과를 낳은 순간이었다.

‘안전벨트가 목숨을 살린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듯했지만 뒷자리 안전벨트 착용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때 90%를 넘던 앞좌석 안전벨트 착용률마저 최근에는 80%대로 추락하는 중이다.

올해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고속도로 차량 안전벨트 착용률은 운전석과 조수석이 각각 86.9%와 81.9%로 나타났다. 반면 뒷좌석 착용률은 18.8%에 그쳤다.

○ 안 매면 사망확률 4.1배 높아

실제 사고에서 안전벨트 착용 여부는 생명과 직결된다. 2일 오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은비 씨 등 걸그룹 ‘레이디스코드’의 멤버 5명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다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에서도 안전벨트를 맨 운전자와 조수석 스타일리스트는 경상을 입었다.

2013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교통사고 치사율이 착용 시보다 4.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안전벨트 착용자 교통사고는 9만5796건이었는데 사망자는 1733명으로 치사율이 1.8%였다. 하지만 안전벨트 미착용자의 교통사고 4383건에서는 323명이 사망해 치사율은 7.3%로 착용 시보다 크게 높았다.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자동차 충돌 실험 결과도 안전벨트 미착용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차량 앞뒤 좌석에 성인 및 어린이 인체 모형을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시속 48km로 벽에 정면충돌한 결과 뒷좌석 성인 인체모형은 두개골에 금이 가고 갈비뼈 6개가 부러져 24시간 이상 의식불명에 빠질 정도의 손상을 입었다. 또 관성에 의해 앞좌석을 타고 넘어 운전자의 머리에 강하게 부딪치는 2차 충격도 발생했다.

조수석의 여성 모형은 안전벨트 미착용 시 머리를 전면 유리에 부딪혀 안면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충격을 받았다. 뒷좌석에 어린이보호장구 없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3세 어린이 모형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친 것으로 나타났다.

○ 어디서든 뒷좌석 안전벨트 매야

2011년 4월 1일부터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모든 승차자의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됐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는 데다 과태료는 고작 3만 원이다. 국토교통부·경찰 등 관계자들은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아직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를 시행하기 쉽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도로에서 의무화해야 한다며 더 강경하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재난연구단장은 “교통선진국들은 이미 10∼20년 전부터 뒷좌석도 다 의무화했다”며 “안전선진국이 되려면 모든 도로에서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1986년) 독일(1984년) 영국(1991년) 등 교통선진국들은 일찌감치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했다. 국제도로교통사고센터(ITRAD)가 발표한 2013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독일(98%) 영국(89%)의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은 한국(19%)보다 월등히 높았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02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벨트 매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단속을 강화해 착용률을 90%까지 끌어올렸다”며 단속 강화와 국가 차원 캠페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량 내에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 장치를 강화하자는 움직임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차량에 운전석 안전벨트 미착용 시에만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차량에 뒷좌석 안전벨트 경고 장치를 설치하면 안전도 평가 때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자동차 제조사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손해보험협회는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사고가 나면 자기신체사고 보상금의 20%(뒷좌석은 10%)를 공제하는 기존 약관 내용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안전벨트#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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