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사회복무요원’ 4인의 낮과 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전철역-복지관에서… 군번 없지만 우리도 ‘진짜 사나이’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천 선학역에서 취객을 구한 이은혁 씨, 서울 
성북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구연동화 CD 제작 업무를 했던 박현상 씨, 일과 후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차승영 씨, 소집해제 
후에도 다문화 가정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서원석 씨.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서원석 씨 제공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천 선학역에서 취객을 구한 이은혁 씨, 서울 성북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구연동화 CD 제작 업무를 했던 박현상 씨, 일과 후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차승영 씨, 소집해제 후에도 다문화 가정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서원석 씨.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서원석 씨 제공
2014년 2월 23일 오전 7시 10분경 인천 지하철 선학역. 인근 유흥가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전철을 기다리던 한 취객이 발을 헛디뎌 선로 밑으로 떨어진다. 전철이 즉각 역내로 진입했다면 취객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 승강장에서 안전 근무를 하고 있던 사회복무요원 이은혁 씨(23)는 이를 목격하고 역무실에 지체 없이 알린 뒤 직원들과 신속하게 취객을 구조했다.

이 씨는 올해 1월에도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이 선로에 떨어진 것을 맞은편 승강장에서 발견해 무사히 구조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던 양승권 선학역장은 “겉으로 보면 무료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길이 145m 이상의 지하철 승강장을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해 모니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오전 시간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데 이은혁 요원의 신속한 대처로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묵묵히 일하는 사회도우미


‘사회복무요원’은 신체조건 등의 이유로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없어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지설 등에서 공익을 위해 일정 기간 대체 복무토록 하는 제도다. 공익근무요원이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더 익숙한 표현이지만 사회복무요원이 정식 명칭이다. 병무청은 지난해 12월 보충역의 복무 유형을 세분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용어를 사회복무요원으로 교체했다.

사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잇단 강력 범죄 사건에 연루된 탓에 ‘군대 안 가고 편하게 출퇴근하면서 온갖 일탈을 일삼는다’는 질타의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전국 4만3000여 명의 사회복무요원 대다수는 이은혁 씨처럼 자기가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본인 업무를 마친 후에 자기 시간을 할애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거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사회복무요원도 있다.

이 씨는 “제복에 선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등급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소수의 일탈행동으로 사회복무요원 전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도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영예로운 제복(MIU·Men In Uniform)인 것이다.

박현상 씨(27)는 2012년 7월부터 2년간 서울 성북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뒤 최근 소집해제 됐다. 서울대 작곡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키 175cm에 몸무게 48kg의 저체중으로 군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았다. 박 씨가 하루 근무시간 중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했던 업무는 작업실에서 동화나 희곡 등을 시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게 CD로 만드는 작업이다. 전문 구연동화가나 자원봉사자들이 녹음한 줄거리에 극적 효과를 줄 수 있는 곡을 선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밤샘 작업 끝에 구연동화 71권을 CD로 만들어 시각장애인 아동과 맹학교, 점자도서관에 나눠 드렸어요. 크리스마스 기념 CD인 만큼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음악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후에 시각장애인 아동한테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박 씨는 매주 토요일에는 서울사회복무교육센터 소속 사회복무요원 사회봉사단인 ‘하비(HAVI)’에서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했다. 그는 “물론 현역 복무자처럼 군장을 메진 않았지만 사회복무요원도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회에서 복무하기 때문에 요령을 피우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소명의식을 갖고 근무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도 갖게 됐고 많은 배움도 얻었다”며 “복무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씨와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김영철 씨(23)는 지난해 9월 소집해제가 된 뒤에도 이곳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봉사활동을 했다. 이달 복학하기 전까지 계속 복지관에 나와 일을 도운 그는 “이곳에서 복무하며 봉사활동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됐고 복무 중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야학에 다문화가정 봉사활동까지


“병원∼. 가방∼.”

오후 9시가 넘은 시간. 서울 중랑구 묵동에 있는 태청야학에서는 한글을 배우는 50, 60대 학생들이 늦은 밤에도 선생님이 말하는 단어를 따라 말하며 공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 수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서울 노원구청에서 행정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사회복무요원 차승영 씨(23)다. 그는 선천적인 척추분리증으로 오래 서 있거나 몸을 숙여 천천히 걷지 못해 4급 판정을 받았다. 노원구청에서 야학 선생님을 하다 출산휴가로 그만두게 된 공무원의 추천을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된 차 씨는 1년 넘게 매주 수요일 업무를 마치고 2시간씩 자원봉사로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구청 업무가 고될 때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뵈면 그런 마음이 싹 가셔요. 수업을 끝내고 나면 항상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 스승의 날에 수업을 듣고 있는 반장 어르신으로부터 감사하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때까지 계속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차 씨의 제자인 박양순 씨(68)는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을 보니 반듯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가 더 많다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차 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기간은 하나의 ‘복권’”이라며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미리 사회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난달까지 2년간 서울 방위사업청에서 행정업무 보조로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한 서원석 씨(23)는 지난해 1월부터 매달 토요일 1∼2회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월계역 인근 도서관에서 베트남, 필리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영어와 한글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은 것은 복무기간 중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소집해제된 이후에도 계속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봉사활동을 하며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오히려 이들과 추억을 만드는 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수요 증가에 따른 사회복무요원 중요성 증대

사회복무요원은 부대 내에서 출입이 제한돼 있는 현역과 달리 출퇴근 근무를 한다. 기초 군사훈련 과정도 현역보다 일주일 짧은 4주간만 받는다. 복무기간은 육군 현역보다 3개월 긴 24개월, 봉급은 일반 현역병과 비슷한 수준(11만∼15만 원)을 받는다. 1995년 향토방위 임무를 수행하던 방위소집제도가 없어진 뒤 지금의 사회복무요원 등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됐다.

한국 사회의 빠른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 증가로 장기요양 및 보호서비스 대상이 크게 증가하면서 사회복무요원의 역할과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재원과 전문적인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정부의 재정 여건상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예산 비율은 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 22.1%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회복무요원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인 셈이다.

사회복무요원의 인력 배정도 사회복지·보건의료·교육문화·환경안전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병무청은 올 6월 확정한 2015년도 사회복무요원 배정 인원 2만 3880명 중 66.5%를 사회서비스 분야에 배치했다. 박창명 병무청장은 “사회서비스 분야 중에서도 특히 노인과 장애인 및 아동 복지시설에 대한 배정 확대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출퇴근이 힘든 도심외곽지역의 사회복지시설에도 합숙근무제 등을 도입해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사회복무요원 배정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역 중심의 지원책 탈피, 일탈 방지 교육 강화해야

사회복무요원도 국가에 기여하고 있는 병역자원이지만 그동안 지원책은 현역병에게만 군 가산점 제도를 부여하는 등 한쪽으로 치중돼 왔다는 지적이 많다. 현역병과 달리 사회복무요원은 그동안 건강보험료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건강보험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젊은 청년들이 사회복무요원과 현역병으로 구분돼 병역을 이행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여건과 신체조건 등의 탓인데도 사회적 편견과 인식 부족으로 비현역병이라는 차별을 받고 있다”며 “사회복무요원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황운성 경인사회복무교육센터장은 “사회복무요원에게도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복무기간 일부를 자원봉사 시간으로 인정하거나 사회복무요원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할 경우 복무기간을 현장 실습 교육 이수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의 범죄 등 일탈행위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올 3월엔 사회복무요원이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가 경찰과 2시간 가까이 대치하던 끝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회복무요원의 범죄는 수형자(징역 또는 금고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 집행유예 1년 이상)와 정신과질환자에 대한 후순위 조정제도 폐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범죄를 저지른 수형자들의 경우 소집 후순위로 배정된 후 4년 동안 소집이 되지 않으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군 당국이 2010년 병역 형평성 차원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 모두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다.

황운성 센터장은 “사회복무요원의 일탈행위를 막기 위해 복무교육 기간을 현행 2∼3주에서 더 늘리고 현장밀착형 지도와 맞춤형 상담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무청은 이를 위해 사회복무요원을 관리·감독하는 복무지도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복무지도관 수가 부족해 1명당 100개 기관과 사회복무요원 470여 명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박창명 병무청장은 “사회복무요원의 일탈을 막기 위해선 복무기관의 1차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복무기관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부여하고 수시로 고충상담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사회복무요원#사회도우미#낮과 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