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진술 거부권 告知 소홀… 적법절차 거친 증거 아니다”
검찰 “지나친 형식논리로 판단”, 90분간 반박 브리핑… 즉시 항소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홍모 씨(41)에게 법원이 ‘제출된 증거들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들’이라며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이 “이런 식이면 간첩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5일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간첩·특수잠입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홍 씨는 2012년 5월 보위부 공작원으로 선발된 뒤 지난해 6월 상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에서 탈북 브로커를 유인·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또 탈북자로 가장해 지난해 8월 국내에 잠입해 탈북자 동향을 탐지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 △국정원 특별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총 12회의 피의자 신문조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 △피고인 의견서와 반성문에 대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증거능력 인정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가 나자 홍 씨는 “순진한 탈북자를 데려다가 간첩으로 몰아 감옥에 넣으면 인권 유린 아니냐”며 북받친 듯 울음을 터뜨렸다.
홍 씨와 변호인은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과 합신센터의 신문조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증거능력을 잃었다. 합신센터 신문 때 탈북자의 한국 법체계 인식 수준을 고려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변호인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이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아 절차적 흠결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조차도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 고지 의무를 위반해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른 조서가 아니다”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권리를 행사할 것인지 여부만 형식적으로 물었을 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 홍 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와 반성문에 대해서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에서 작성됐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검찰은 1시간 30분 동안 브리핑을 열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진술조서에 진술거부권을 하도 들어서 지루하다고 한 얘기가 있을 정도로 수차례 고지했고, 직접 확인 서명까지 받았다”며 “증거 판단을 지나치게 형식논리로 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재판부가 ‘검찰의 2∼8회 피의자 신문조서는 영상 녹화물이 없어 실제 진술과 진술서 내용이 동일하다는 객관적 증명이 어렵다’고 판단한 데 대해 “1회 조서의 진술 과정을 모두 녹화했고, 그 내용이 조서대로 돼있는 것을 법정에서 확인까지 했다”며 “공소 사실을 망라한 1회를 녹화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2∼8회 조서는 녹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의견서와 반성문에 대해선 “재판부가 내라고 해서 낸 것이지 검찰이 강요한 사실이 없다”면서 “홍 씨가 스스로 재판부에 낸 것을 재판부가 허위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5일 오후 5시 곧바로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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